어떤 교회 목사님께서 성경말씀 중에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말이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을 내밀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목사님께서 일반인들로부터 무척 많은 공격을 받았기에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네가 진정 성경말씀을 믿고 있는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가 말한 대로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을 숱하게 들었기에 이런 말을 한거겠지요.
이런 이야기는 나 역시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네가 진정 도를 닦는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던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집중적으로 상고(詳考)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눅6:27)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8)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눅6:29)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눅6:30)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이렇게 예수님말씀을 읽어보니 정말 우리들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참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이러한 점은 어디까지나 예수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이가 행해야할 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믿지도 않는 이들이 이런 말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27절에 말해놓았듯이 듣는 자에게 말한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는 거지요.
지금 예문으로 올린 모든 일들을 행할 수 있는 이들이 상대방에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은 하지도 못할 일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실컷 남에게 신세를 지고 돈을 빌려놓고서 한다는 말이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용서하라 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당연히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내 곁에 사기꾼이 와있다 해도 그를 미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 구도자의 마음상태라 할 수 있지만 사기꾼이 이런 말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아마 이런 말을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하기 싫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며 이러한 말도 사기꾼 같은 심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람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6)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36절은 단순하게 자비롭게 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라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비로운 하나님이 되라는 거지요.
만약 받은 대로 돌려준다면 계산하는 하나님이며 인과응보의 법칙을 준수하는 하나님이 될 겁니다.
그래서 37절에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타인들의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정죄하면 본인이 그렇게 돌려받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기독교인들이 오른쪽 뺨을 맞고 왼쪽 뺨을 돌려대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고 했을 때 본인역시 이러한 일을 당하게 된다는 거지요.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보자는 식의 시험을 불러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38절에서 주는 사람은 흘러넘치게 돌려받게 된다 했으며 타인을 향해 비판을 한사람은 그 비판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된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들이댄 잣대만큼 나또한 잣대질을 당한다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인들에게 요구하던 것들을 본인역시 요구받게 된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무서운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이 내용을 상고(詳考)해보면 무조건 용서하라가 아니라 인과응보를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인과를 넘어서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방인들에게는(믿지 않는 이들) 본인들이 저지른 일을 그대로 돌려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내가 누군가로부터 손해를 당한다면 그자체로 빚을 갚은 것이니 만큼 더 이상 갚아야할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갚아야할 일을 만들었기 때문에 윤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믿고 안 믿고를 떠나 하나의 법칙과 같은 것으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 같은 경우 인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주고받는 일을 하지 않으려합니다.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등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형제이상의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금전적인 거래를 하지 않으며 거래를 하더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빌려줍니다.
또한 길거리에 돈이 흘러있어도 줍지 않으며 남의 물건 또한 취하지 않습니다.
돈 액수가 크든 작든 내 돈이 아닌 다음에는 줍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작업도구가 흘려져 있는 것을 숱하게 봅니다.
과거 같으면 일단 줍고 난 후 주인을 찾아주거나 내가 갖거나 했습니다만 이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내 물건을 숱하게 잃어버렸음에도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 것은 물건에 묻어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잃어버린 주인의 감정이 그 물건에 스며있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같은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긴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게만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물건을 잊어버렸을 때의 심정을 떠올려보면 내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아끼는 정도가 클수록 속상한 감정은 더욱 클 것이고 금액이 클수록 상실감과 허탈함은 더욱 클 것입니다.
물건과 돈에 그 사람의 상실감과 허탈감이 묻어있다는 말이며 그러한 상처를 그 사람에게 준 꼴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에너지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방귀를 뀌면 냄새가 주위에 퍼지듯이 파장은 공기를 타고 온 세상에 퍼져나갑니다.
오늘은 내가 네 것을 취하고 내일은 네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생각이겠으나 영생을 목표로 삼고 구도의 길을 걷는 이는 적어도 에너지 파동의 역학을 알아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버려진 것을 취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지요.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가구나 헌옷들은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원망의 마음이나 상실감과 허탈한 감정의 파장이 담겨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내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처음에는 속상해하지만 금방 마음을 바꾸어 누군가 필요한사람이 가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야 물건을 취득한 사람이나 나에게도 좋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은 일을 뺨맞는 일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그다지 틀리다고 볼 수 없습니다.
뺨을 맞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어떤 상황이 주어져야 일어나는 일입니다.
상대방을 화나게 하거나 맞을만한 짓을 했거나 아니면 오해를 했기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상대방이 화가 풀릴 수 있게 한 대 더 맞으라는 거지요.
영생을 얻으려면 인과의 고리를 풀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과의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영혼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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