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생의 하늘에는 높낮이가 없다.

배가번드 2023. 11. 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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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믿음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막상 고난과 시련이 다가오면 믿음이 사정없이 흔들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가난이 방문을 열고 찾아오면 사랑은 창문을 열고 도망간다는 말이 생겨난 겁니다.

고난과 시련은 물질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람이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면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흘을 굶으면 남의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으며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생겨난 거라 여겨집니다.

아무리 영생을 향해 걷고 있다 해도 현실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어려움은 믿음의 길에 대한 회의감(懷疑感)이 들게 만듭니다.

이러한 점을 세례요한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11:3)

 

3절은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자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내용을 보건데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던 요한조차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예수께 오시기로 예정된 이가 당신이냐고 묻는 것은 엘리야를 가리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야가 재림 한다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멸망이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는 말라기서의 내용을 액면대로 믿고 있었던 겁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6)

 

크고 두려운 날이란 사람이 죽는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세상멸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에게 있어 죽는 날은 곧 멸망과 같으므로 크고 두려운 날은 육신의 죽음을 뜻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5절 내용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겠다는 말이 됩니다.

엘리야의 뜻이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라는 사실을 볼 때 강인한 믿음이 엘리야이며 이는 곧 성령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의 강인한 믿음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성령은 마음 안에서 되살아나 아비에게서 자녀에게로, 자녀에게서 아비에게로 전해진다는 겁니다.

the heart는 마음 안에 심어진 성령, 즉 엘리야를 뜻하며 그가 아비에게 임하면 아들을 회복시킬 것이고 아들에게 임하면 아비를 회복시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복이 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저주로 육신을(땅) 친다고 합니다.

성령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육신이 죽는 순간 영혼도 죽게 됨으로 이렇게 기록해놓은 거지요.

이것이 바로 말라기에 기록된 멸망의 날에 오게 될 엘리야의 참모습입니다.

따라서 요한이 예수님께 물었던 것은 성령이 임하게 된 이가 맞느냐는 물음이었던 겁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마11:10)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11:14)

 

10절은 하나님께서 메신저를 보내 구도자의 길을 예비하게 만들겠다는 내용의 구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바로 메신저(使者)이며 그가 구도자의 앞길을 예비하도록 여호와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인물이라는 뜻이지요.

예수께서는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고 있던 엘리야의 재림은 바로 요한을 두고 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마태복음11장 3절로 돌아가 요한의 물음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더러 당신이 오신다고 하던 엘리야가 맞느냐고 물었는데 정작 예수님은 요한이 재림한 엘리야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것은 모순된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담긴 뜻을 헤아려보면 간단하게 설명이 됩니다.

요한이 물었던 것은 예수님이 성령이 임하신분이 맞느냐는 물음이었고 예수님역시 성령이 요한에게도 임하였다는 점을 말한다고 여기면 간단하게 이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성령이 임하신분이라는 말이며 우리역시 성령과 하나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번 더 되새겨봐야 할 대목은 10절로서 이 내용은 말라기뿐만 아니라 이사야서에도 나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

The voice of him that crieth in the wilderness,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사40:4)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and 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made low: and the crooked shall be made straight, and the rough places plain: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40:5)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for the mouth of the LORD hath spoken it.

 

광야에서 외치는 이에게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The voice of him)

광야는 삭막한 들판이고 사막은 메마르고 건조한 땅을 가리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으로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라는 뜻이지요.

직역을 해보면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데,(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사막과 광야에 곧바로 나있는 고속도로를 만들어라 입니다.(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이 말씀인즉 불모지(不毛地)나 다름없는 이방의 마음에 하나님께로 직통하는 빠른 길을 만들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국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이 됩니다.

이어지는 4절 내용을 보면 천국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짜기가 돋우어 진다는 것은(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낮은 이가 높아진다는 말이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진다는 것은(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made low) 자신을 드높이던 사람은 낮아질 거라는 뜻입니다.

또한 구부러진 길이 바르게 된다는 것은(the crooked shall be made straight)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아준다는 뜻이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된다는 것은 거친 마음상태가 평정심을 유지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 했으며(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모든 육신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all flesh shall see it)

이 말씀인즉 육신이 성령을 보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높낮이가 없고 만물의 본질이 동일함을 깨닫게 될 때 성령이 드러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따라서 요한보다 예수님이 높다거나 예수가 엘리야보다 높다고 생각한다면 성령에 대해 모른다고 봐야 됩니다.

영생의 하늘에는 높낮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동일체의 뜻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