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을 하다가 눈에 모래가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입선을 하기위해 요비선을 집어넣는 과정에서 불안정하게 집어넣느라 모래가 눈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하필이면 통합박스 앞에 미장하시는 분들의 틀비계가 놓여있는 바람에 몸을 구부린 채 일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거지요.
틀비계가 가벼운 것이 아니라 크고 무거운 것이어서 치워 달라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었고 다행히 박스가 보이기에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가 작업을 했는데 요비선이 구부러진 채 들어가는 과정에서 모래가 튕겨져 눈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다행히 눈물을 조금 흘리고 나서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사는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새삼스럽게 육신의 한계를 느끼게 된 셈입니다.
아마 어떤 이들은 내말을 듣고 이해를 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일은 당해봐야 압니다.
이번처럼 자신의 일을 뜻하지 않게 방해받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라야 나 역시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구나하고 깨닫는다는 거지요.
미장하시는 분으로서는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것이 업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연히 피해자가 생기고 본인 때문에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일로 지옥을 가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이런 일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 누군가로부터 방해받는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똑같은 일은 아니어도 다른 형태로 돌아오기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모를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렇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한번은 내가 작업을 해야 하는 박스 앞에 벽돌이 높이 쌓여있기에 벽돌을 허물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나중에 미장하시는 분이 욕을 하겠지만 일일이 벽돌을 치워가면서 일을 하게되면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겁니다.
어차피 벽돌을 쌓으려면 한 장씩 놓아야 함으로 가지런하게 정리되지 않다 해도 큰문제가 없을듯해서 불가피하게 벽돌을 넘어트렸습니다.
처음부터 벽돌을 가져다 놓을 때 작업을 해야 하는 박스 앞에 놓아서는 안 됨으로 그들의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남이 쌓아놓은 벽돌을 허문 것은 분명 내 잘못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알기 때문에 불이익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일시적으로 화가 난다해도 소화를 시키며 나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을 통해 내가 저지른 일들을 되돌려 갚는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또 다른 업장을 만들지 않게 됩니다.
내가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 원망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내가 지어놓았던 내가 모르는 죄를 갚을 길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But if ye be without chastisement, whereof all are partakers, then are ye bastards, and not sons.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12:9)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12:10)
For they verily for a few days chastened us after their own pleasure; but he for our profit, that we might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12:11)
Now no chastening for the present seemeth to be joyous, but grievous: nevertheless afterward it yieldeth the peaceable fruit of righteousness unto them which are exercised thereby.
8절에 그 모든 것이 연계(連繫)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whereof all are partakers)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징계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생아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계는 육신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아버지가 아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사랑해서라고 하지만 10절을 보면 개인의 감정이 있어서 자식을 때린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다 보니 때로 감정에 의해 자식에게 체벌을 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공경하며 따른다 했는데 여기에는 다른 뜻이 담겨있습니다.(9절)
아버지가 자식을 체벌할 때 개인의 감정이 실려 있다 해도 공경해야한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가 개인의 감정으로 나를 때린다 할지라도 그 또한 이유가 있다는 거지요.
물론 이것은 때리는 아버지를 위한 말이 아니라 맞는 자식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이는 이렇게 받아들여야 인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녀들을 징계하는 것은 성령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거룩하심에 참예케 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잘못을 할 때마다 징계가 주어져야 육신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말씀을 상고하다보니 갑자기 내가 다니는 교회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죄가 모두 없어졌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징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준다고 말씀하신 것 까지는 받아들이겠지만 어째서 죄 사함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징계를 받는지 이상하다는 겁니다.
징계는 잘못에 대해 벌을 가하는 것인데 우리 죄가 영원히 씻겼다면 징계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지요.
이것은 명백하게 성경말씀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며 해석을 달리해야 됩니다.
예문으로 올린 히브리서만 보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징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징계로 인해서 연달(練達)이 되어 평강의 열매가 열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yieldeth the peaceable fruit of righteousness unto them)
이 말씀은 아브람이 멜기세덱의 등급에 올랐을 때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 “의의 왕”이 된다는 말과 같은 겁니다.
징계를 통해 육신의 한계점을 깨닫고 성령과 하나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거지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성령과 하나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말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육신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단 복음말씀을 통해 성령이 우리몸 안에 들어있음을 깨닫고 빛이신 성령이 내안에서 불꽃 되어 타오르게 만들어야 됩니다.
이미 수없이 말해주었듯이 사람몸 안에는 빛이신 성령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다만 본인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육적인 삶에 찌들어 사는지라 영이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욕심으로 인해 성령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으며 어둠속에서 살고 있는 거지요.
이것은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마6:22)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6:23)
일단 빛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회개하고 용서받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성령이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게 되고 급기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겁니다.
살아생전 하나님 왕국을 보게 되는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과 하나 되고 싶은 이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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