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멸망의 가증한것이 거룩한 곳에 서다.

배가번드 2023. 11. 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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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에 화재가 발생되는 바람에 이틀이나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나로서는 간만에 편한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지요.

새벽4시면 일어나 6시 출근 때까지 자판을 두드리고 퇴근 후 저녁에도 성경을 들여다보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던 일상이 뜻하지 않는 재난으로 멈추게 된 겁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재앙은 나에게는 작은 축복으로 다가 왔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터넷여행을 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글을 기다리는 분들은 왜 갑자기 검색이 되지 않느냐며 문의 전화를 하셨지요.

사정을 듣고 난 후 이해는 하셨지만 상당히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 내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들의 바람이 곧 내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같은 일은 우리 모두가 구도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며 신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분들의 인생목적이 영적인데 있지 않고 육적이고 물질적인데 있었더라면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통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내재하신 성령이 내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요청을 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내재하신 성령이 그들의 입과 상념(想念)을 통해 나태해지려는 내 육신을 다독거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하나님이신 성령을 매일만나는 방법이며 매순간마다 성령과 함께하는 방법입니다.

육신은 언제나 습관에 의해 움직이며 편안한 것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피곤하면 누우려하고 조금만 힘이 들어도 하기 싫어하지요.

나 역시 육신을 가지고 있는지라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키는 것은 내재하신 성령의 음성이며 극도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성경을 상고(詳考)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이 깨어남으로 인해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지요.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마24:15)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마24:16)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마24:17)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마24:18)

 

이 내용을 교회에서는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침공을 당해 멸망당하는 일로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이 깨어날 때 일어나는 일을 말해놓은 겁니다.

다니엘서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에 예수님께서 읽을 수 있는 자는 깨달으라고 말해놓은 거지요.(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이해를 돕기 위해 다니엘서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9:26)

And after threescore and two weeks shall Messiah be cut off, but not for himself: and the people of the prince that shall come sha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and the end thereof shall be with a flood, and unto the end of the war desolations are determined.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9:27)

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KJV)

 

26절에 육십(60) 이(2) 이레(7) 후라 기록해놓은 것은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6은 부활의 숫자이며 10은 완성의 숫자, 즉 부활이 완성되었다는 겁니다.(6×10=60)

2는 증거의 숫자이며 7은 창조의 한주기를 뜻함과 동시에 완전함을 뜻하지요.

이렇게 대비하여 보면 이 내용은 영적부활이 이루어져 완전에 이른 증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선다는 대목은 (KJV)성경에는 없으며 이 대목은 (NASB)를 번역한거지요.

지면관계상 올리지는 않았지만 상당부분 잘못된 번역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다고 번역했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메시아와 끊어진다고 되어있습니다.(Messiah be cut off)

그렇지만 자기 자신 때문은 아니라고 했으니(not for himself) 육신으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재한 성령이 드러남으로 인해 육과 분리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본인 스스로가 메시아가 되었으므로 누군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됨을 이렇게 말한 거지요.

그리고 왕의 백성에 해당하는 “the people of the prince”에 대한 번역도 잘못되었다 봐야합니다.

왕을 뜻하는 단어 king을 쓰지 않고 왕자를 뜻하는 prince를 쓴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하나님)이 완전히 드러났기(하나가 됨) 때문입니다.

그가 오게 되면(성령이 드러나게 되면)육이 완전히 무너지게 됨으로 성읍과 안식처를 파괴한다고 했습니다.(come sha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육의 멸망이 마치 홍수에 잠기는 것 같다고 했지요.(the end thereof shall be with a flood)

그러므로 육신이 죽음에 이르는 날까지 영과 육의 전쟁은 계속되며 이 모든 일은 정해진 것이라 기록한 겁니다.

27절에서 말하는 이레는 창조의 한주기를 뜻하는 숫자 7을 의미하며 그는 성령이 드러난 인자를 뜻합니다.

성령이 드러난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완성을 준다는 의미로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정한다 한 겁니다.(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그리고 완성에 이르지 않고 반 정도의 성취만 있어도 우상숭배를 금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 저절로 기복신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말해놓은 거지요.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 육을 혐오감 가득한 것으로 보게 됨으로(성경은 육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음) 육을 황폐케 만든다고 합니다.(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영적 완성에 이르는 날까지(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영육간의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황폐하게 될 육신에 진노가 퍼부어진다 한 겁니다.(be poured upon the desolate)

이 내용은 실로 어려운 내용이므로 예수님조차 읽을 수 읽는 자는 깨달으라 했습니다.

과연 성경을 읽는 이들 가운데 몇이나 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것은 육이 멸해야 가능하다는 점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육의 멸망을 원하고 영적부활을 꿈꾸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