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배가번드 2024. 4. 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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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모처럼 교회 형제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내가 교회활동에 적극적이지가 않다보니 약간은 어색함도 있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안배다 생각해서 초청에 응했던 겁니다.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명상단체에서 경험한일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법과 절차는 다르게 보이지만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대화하는 것은 동일하며 관심과 초점도 한곳을 향하고 있지요.

개인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전도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어떤 종교단체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95년 입문을 한 후로 해마다 홍법(弘法)활동을 했는데 교회에서는 전도라고 부르는 일을 쉼 없이 해나왔던 겁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족들을, 혹은 친구나 이웃들을 교회로 불러들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내 과거를 보게 되었으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지요.

내가 처음 명상단체에 입문을 결심하게 된 것은 누군가의 권유로 인해서가 아니었고 개인의 영적체험에서 비롯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갈라지는 고통을 경험한 후 어느 날인가 술자리에서 내면에서 한목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며 그로인해 내 인생이 바뀌게 된 겁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권유로 영적인 길을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던 셈입니다.

하지만 내 외면이 둘이 아니라는 인식에 도달하면 전도는 외적권유에 의한 내적반응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과 성령이 되살아나는 것이 하나라는 것이며 이러한 일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

The voice of him that crieth in the wilderness,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사40:4)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40:5)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for the mouth of the LORD hath spoken it.

 

흔히들 이 내용을 예로 들어 세례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상세하게 들여다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는 성령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는 불모(不毛)의 땅으로 믿음이 서지 않은 사람의 마음 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 안에는(in the wilderness) 성령이 들어앉아(잠들어 있음) 있는데 항상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는 뜻으로 이렇게 기록해놓은 겁니다.(육신이 인식을 하지 못함)

사막과 같이 메마른 마음 밭에 하나님과 직통하는 길을 만들라는 것은 성령이 드러날 수 있게 준비하라는 뜻이지요.(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

그래서 4절은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덴의 뜻은 “광야, 평평한 땅, 비옥한들, 즐거움” 등으로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영생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마음 밭을(에덴동산)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태초에 완전했던 곳으로 만들 수도 있고 경계의 벽이 둘러쳐져 영생과를 먹지 못하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완전하게 평평해진다는 것은 빛이신 성령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를 뜻하며 높낮이나 경계의 벽이 허물어졌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5절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고(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모든 육체가 본다고 한 겁니다.(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정리해보면 내면에서 외치는 외마디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에게는 거룩한 성령이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지요.

모든 사람이 본다한 것은 성령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뜻으로 준비된 자는 성령이 내, 외면에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즉,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는 자도 있고(성령이 드러남) 외적으로 성령이 드러난 인자가 가르침을 주려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the mouth of the LORD hath spoken it)

결국 3절에 외치는 자는 내재(內在)하는 성령이신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며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요한복음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지요.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요1:21)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요1:22)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1:23)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요1:24)

 

20절에서 22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마치 요한은 성령을 깨닫지 못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23절에 보면 자신을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밝히고 있지요.(이사야서와 동일함)

그러므로 앞서 부인한 것은 성령은 육신이 아니라는 뜻이며 성령이 외부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 말해놓은 겁니다.

바리새인들이란 자신들만이 구분된 이들이라 주장하며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렇게 기록해놓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초점을 성령(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으며 또 다른 시각으로는 모든 것은 역할이라는 점을 말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요한의 역할을, 또 누군가는 예수님의 역할을 맡아서 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도와 선지자의 역할을 담당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요.(for the mouth of the LORD hath spoken it)

이러한 점을 볼 때 이번 형제들의 모임은 의미가 있다 생각됩니다.

구역집회를 앞두고 모여서 전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내적으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또한 하나님의 외침이라 여길 수 있을 겁니다.

모임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본인들 스스로가 세례자 요한과 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 생각합니다.

본인의 삶이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면 세상 사람들이 저절로 관심을 기울이고 따라올 거라는 거지요.

구태여 교회에다 끌어다 놓을 필요도 없고 명상단체로 데리고 가서 앉혀 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본인이 영적인 일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는 내재하신 성령이 아실 것이고 거기에 따른 보상이 주어질 겁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군가에게 교회를 나가라거나 명상단체에 가입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내가 말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라는 말도 하지 않으며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쓸데없이 모여드는 것은 필요 없다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미 단체도 있고 교회나 절이 넘쳐나는데 구태여 또다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만이 정답이며 그중에서도 사랑의 마음을 담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내보기에는 명상하는 사람들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너무나 착하며 그들 모두는 자신이 한만큼 돌려받을 것이 확실하다 여겨집니다.

 

함이 없이 한다는 뜻을 아는 이들은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