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

배가번드 2024. 8. 3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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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연구하는 도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슬람교의 원뿌리는 성경에 있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을 기독교인들의 성경처럼 절대자이자 유일신 알라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지요.

그런데 코란을 보면 알라의 특성이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알라는 진리이며 빛이며 “동도 서도 알라의 것, 어느 쪽을 향해도 알라의 얼굴은 거기에 계신다. 골고루 존재하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코란 2:11)

하나님의 무소 부재함과 편재하심, 그리고 전지전능한 점과 흡사하며 알라의 뜻도 “하나님”입니다.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철천지원수라도 된 것 마냥 서로를 미워하고 불신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헐뜯으며 원수처럼 지내고 있지요.

같은 이슬람교도들끼리도 파가 갈려 전쟁을 하고 있으며 기독교도 여러 갈래로 갈려져 마치 처음부터 다른 종교인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며 자신들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 큰소리칩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라 여길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영생의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음에도 믿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른 이들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들만큼은 이 같은 오류에서 벗어나시길 바라며 오늘도 변함없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 보겠습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롬4:9)

Cometh this blessedness then upon the circumcision only, or upon the uncircumcision also? for we say that faith was reckoned to Abraham for righteousness.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롬4:10)

지난시간에 이어서 행위와 무관한 믿음에 따른 구원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되묻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 받았음을 말하는데(was reckoned to Abraham for righteousness) 그것이 믿음에 따른 일이라는(we say that faith) 겁니다.(9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여긴 것은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0절)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할례를 받아야 육의 속성이 벗겨져 성령이 드러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인데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지요.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4:11)And he received the sign of circumcision, a seal of the righteousness of the faith which he had yet being uncircumcised: that he might be the father of all them that believe, though they be not circumcised; that righteousness might be imputed unto them also:

11절을 상세하게 읽고 보니 10절에서 그렇게 말해놓은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할례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할례로 완전해진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서 의로움을 봉인(封印)받기 전의 일이라는 겁니다.(a seal of the righteousness of the faith which he had yet being uncircumcised)

이렇게 되어야 무할례자(이방인)가 아브라함을 표본으로 의롭다 여김 받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성경을 모르는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아브라함을 표본 삼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바울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롬4:12)

And the father of circumcision to them who are not of the circumcision only, but who also walk in the steps of that faith of our father Abraham, which he had being yet uncircumcised.

결국 무할례자로서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할례자의 조상이 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좇는(walk in the steps of that faith of our father Abraham)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거지요.

실지로 이슬람교도들조차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한다는 점을 볼 때 이 같은 바울의 말씀은 틀린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4:13)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롬4:14)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

13절 내용은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것으로 지난시간에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행하는 일로서 의로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14절에 율법에 속한 자들이란 육에 속한 이들을 가리키며 성령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이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성령의 불씨를 전해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한 것은 성령이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었는데 육신의 아브라함을 말한다면 믿어봐야 소용이 없으며 약속 또한 영향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노여움을 유발시킴으로 율법이 없어야 범죄 또한 없어진다는 도리를 알아야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15절)

즉, 빛이신 성령은 율법과는 무관한 존재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4:16)

Therefore it is of faith, that it might be by grace; to the end the promise might be sure to all the seed; not to that only which is of the law, but to that also which is of the faith of Abraham; who is the father of us all,

그런데 16절에서는 율법에 속한이들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여길 수 있다고 합니다.(not to that only which is of the law, but to that also which is of the faith of Abraham)

이 말씀인즉 하나님과 하나 된 아브라함은 육에 속한 이들이나 영에 속한 이들에 관계없이 믿음의 조상으로 여김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지요.

성령과 하나 되고 못되고는 본인들의 믿음에 달린 일이지만 아브라함은 영적완성에 도달했으므로 영육모두가 섬김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약속된 시간이 도래했으므로 잠시 쉬었다가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