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을 강해하는 동안 몇 번에 걸쳐 구약의 내용이 인용되었지요.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었음에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것은 제한된 지면 탓으로 오늘 다시 한 번 되새겨 볼까 합니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창18:10)
And he said, I will certainly return unto thee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and, lo, Sarah thy wife shall have a son. And Sarah heard it in the tent door, which was behind him.
한글 성경은 내년 이맘때라 번역했지만 직역해 보면 생명의 때에 따라(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돌아올 것이라 했습니다.(I will certainly return unto thee)
여기에서 말하는 생명의 시간이란 성령을 깨닫는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특정한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관계상 모든 내용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사라가 이미 생리가 끊어졌음에도 아들을 낳을 것이라 기록했음을 볼 때 이 내용을 액면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속뜻을 알게 하기위해 일부러 생리를 언급했는데 그조차도 하나님을 내세우며 액면대로 받아들여야 된다 말한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입니다.
10절 뒷부분에도 나오거니와 장막이란 우리의 마음을 비유한 것으로 그 안에 성령이 들어있음을 사라가 문 뒤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점을 모르는지라 열 달 뒤에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여 내년 이맘때로 번역해놓은 거지요.
그러므로 이 내용은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 안에서 성령을 깨달아 영적 결실을 보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겁니다.(아담과 하와는 한 몸)
이러한 까닭에 성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창25: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25:23)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창25:24)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창25:25)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창25:26)
아브라함은 사라와 결합하여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리브가와 결합하여 야곱을 낳았지요.
그런데 똑같은 영적 성과물이지만 이삭의 아들들은 복중에서부터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22절)
이는 영육간의 전쟁을 표현한 것으로 정말 태중의 아이들이 싸움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영육간의 전쟁에서 육이 승리하면 영을 끌고 가는 것이고 영이 승리하게 되면 영이 육을 이끌고 삶을 영위하게 됨을 비유로서 말해놓은 겁니다.(23절)
그런데 이미 쌍둥이가 복중에서 서로 싸운다는 점을 앞서 말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쌍둥이가 태어난다 말하고 있습니다.(24절)
이는 사람의 내면에 육적인 면과 영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또다시 언급을 한거지요.
사람이 육신으로 태어나지만(25절) 후에 영이 육을 통제하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26절에서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잡는다 했으며 이삭의 나이가 육십 세 때 일어난 일이라 기록한 겁니다.
육은 거듭남의 숫자이며 십은 완성의 숫자이므로(6×10=60) 깨달음을 얻게 되면 육적인 면을 영이 통제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것은 아니며 영적인 씨가 심어져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이 영적인 길을 선택해야 이런 일이 주어지는 것이지 본인의 선택이 육적이고 물질적이라면 에서(뜻; 털 복숭이)가 주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육적인 사람보다 영적인 사람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지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말1:2)
I have loved you, saith the LORD. Yet ye say, Wherein hast thou loved us? Was not Esau Jacob's brother? saith the LORD: yet I loved Jacob,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말1:3)
And I hated Esau, and laid his mountains and his heritage waste for the dragons of the wilderness.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2절)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Wherein hast thou loved us?)
이 말인즉,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본인들의 물질적이고 육적인 육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은 3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 한 것은 육보다 영을 사랑하신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에서의 산은 누워졌고(laid his mountains) 그의 유산은 광야의 용으로 인해 낭비되었다고 합니다.(his heritage waste for the dragons of the wilderness)
산이 누워있으면 더 이상 산이 아니며 허허벌판에 용이 있어보았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겁니다.
즉, 육을 사모하는 이는 하늘의 영광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의 산은 깨달음을 뜻하며 유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약속으로 보면 됩니다.
둘 다 영적완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육적이고 물질적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주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해주고 있는 거지요.
한마디로 표현해서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일을 도가(道家)에서는 돈과 도는 함께 할 수 없다 말하고 있으며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No servant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mammon의 뜻은 “부, 재물, 물욕의 신” 등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므로 나 홀로목사의 말은 틀린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일을 말해주어도 믿지 않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으며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됩니다.
하지만 영생이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이러한 말을 믿어야하며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의 성경연구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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