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을 깨달아야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

배가번드 2024. 10. 26.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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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과거에는 성경책만 펼치면 잠이 왔는데 이제는 성경책만 펼치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이같은 일은 30년 전 영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나와 함께하는 분들이 지금까지 성경강해에 함께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기한 일입니다.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이야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대단한 내용임으로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성경 내용에 대해 별관심이 없는 이들이 따라온다는 것은 성령의 불씨가 심어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므로 이생이나 전생에서 뭔가 성령의 불씨를 전달받을만한 일을 행했음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복 받을 짓을 한사람에게 복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생을 상속받을 만큼의 행위를 했음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 않은 것이 싹이 날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로마서 11장에 인용된 구약연구의 네 번째 장의 막을 올리겠습니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사59:15)

Yea, truth faileth; and he that departeth from evil maketh himself a prey: and the LORD saw it, and it displeased him that there was no judgment.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사59:16)

And he saw that there was no man, and wondered that there was no intercessor: therefore his arm brought salvation unto him; and his righteousness, it sustained him.

 

진리(진심, 진실)가 없음으로(truth faileth) 악으로부터 멀어졌음에도 자신을 희생시킨다고 합니다.(departeth from evil maketh himself a prey)

이는 사람이 진실 되지 못하면 하나님이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했지요.(displeased him that there was no judgment)

즉, 사람이 착하게만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진리)을 깨달아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16절에 사람이 없다 했는데 이는 성령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는 뜻이며 중재자가 없다는 것은 성령의 불씨를 전해줄 이(중보자, 영적스승, 인자)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 스스로의 팔로 구원을 베푸시며(his arm brought salvation unto him) 자신의 공의로 살아가게 한다고 했습니다.(his righteousness, it sustained him)

하나님을 담지 않은 그릇이 없으므로 영적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내재하신 성령의 힘이 사람 안에서 작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사59:17)

For he put on righteousness as a breastplate, and an helmet of salvation upon his head; and he put on the garments of vengeance for clothing, and was clad with zeal as a cloak.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사59:18)

According to their deeds, accordingly he will repay, fury to his adversaries, recompence to his enemies; to the islands he will repay recompence.

 

17절을 보면 정의로움을 갑옷처럼 입고(put on righteousness as a breastplate) 구원을 헬멧으로 쓰며(helmet of salvation upon his head) 보복의 의상을 옷처럼 입고(put on the garments of vengeance for clothing) 열심을 망토처럼 걸친다 했지요.(clad with zeal as a cloak)

구원에 대해 열심인(진심인) 사람은 인과응보가 분명하여 정의롭게 행동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8절에서 그들의 행위에 따라(According to their deeds) 보상 받을 것이라 말하고 있으며 상대방에게 분노하며 원수에게 보답하고 섬에게 보상을 갚는다 했습니다.(to the islands he will repay recompence)

본인의 행위에 따라 인과가 분명히 드러나게 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주목할 점은 상대방과 원수입니다.

상대방이란 하나님과 상대하는 육신을 가리키며 원수 또한 영적인 길에 반대하는 육적인 면을 비유한거지요.

그리고 섬은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조차 인과의 법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 겁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사59:19)

So shall they fear the name of the LORD from the west, and his glory from the rising of the sun. When the enemy shall come in like a flood, the Spirit of the LORD shall lift up a standard against him.

 

하나님을 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해를 믿거나 말거나 항상 하늘에 떠있듯이 하나님 또한 빛이신 성령으로 존재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서쪽이란 성령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봐야하며 반대로 동쪽은 빛이신 성령이 해처럼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광을 두려워하게 되며 원수가 홍수처럼 밀려올 때(come in like a flood) 여호와의 영이 그를 대적하여 일으켜 세우신다 한 겁니다.(the Spirit of the LORD shall lift up a standard against him)

영어성경과 한글성경은 내용이 많이 다르므로 다음 구절을 보아야 제대로 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59:20)

And the Redeemer shall come to Zion, and unto them that turn from transgression in Jacob, saith the LORD.

 

구원자가 시온에 임한다(the Redeemer shall come to Zion) 했으니 높은 인식에(시온의 뜻: 봉우리, 우뚝 솟은, 요새) 도달한 이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야곱안의 죄로부터 돌이킨 자에게도(turn from transgression in Jacob) 성령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인즉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자가 없다는 뜻이며 성령을 깨달아야만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야곱 안에도 죄(罪)의 품성(品性)이 있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 홀로목사의 이러한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1)

 

영어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한글성경이 얼마나 잘못된 번역을 하고 있는지를 알거라는 말씀을 드리며 네 번째 장의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