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으로 충만하면 유연하게 된다.

배가번드 2024. 12. 1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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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3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구도자의 나날은 해가 바뀐다고 해서 별다를 바 없겠지만 아직도 만나야할 인연이 남았는지 이곳저곳을 다니게 됩니다.

수원으로 이사 와서 새롭게 만난 인연만 해도 벌써 수십 명에 달하는지라 공사현장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구도자에게는 무척 중요한일이라 생각하고 있지요.

육신은 한곳에 정착하고자 하나 내재하신 성령께서는 아직도 내가 여기저기 다니기를 원하시나 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으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생을 향한 여정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외형적인 고난과 어려움은 성령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이미 지난 30여년을 이렇게 지내왔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며 2천 년 전 예수를 비롯한 사도들의 삶도 이러했으니 오늘도 변함없이 사도바울의 행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Now I beseech you, brethren, by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ye all speak the same thing, and that there be no divisions among you; but that ye be perfectly joined together in the same mind and in the same judgment.

 

겉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내용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같은 말을 하라가 아니라 같은 것을 말하라(speak the same thing)로 고쳐야한다는 겁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말을 하며 분쟁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온전히 합하여 질 때 비로소 성령과 하나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렇게 해석해야 마땅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고전1:11)

For it hath been declared unto me of you, my brethren, by them which are of the house of Chloe, that there are contentions among you.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전1:12)

 

글로에의 뜻은 “어린 풀”로서 미 성숙된 초보구도자를 비유한 겁니다.

그래서 글로에의 집으로부터(which are of the house of Chloe) 바울에게 신고 되었다는(it hath been declared unto me) 표현을 한거지요.

그러므로 12절에 언급된 인물들의 이름을 분석해봐야 제대로 된 뜻을 알게 됩니다.

바울의 뜻은 “지극히 작은 자”이고 아볼로의 뜻은 “파괴자, 침략자”이며 게바는“바위, 반석”이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등장하고 있는 인물모두가 구도자의 강력한 믿음을 가리킨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작은 존재로 낮출 줄 아는 겸손함과 육적속성을 파괴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진 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이름에 담긴 속뜻을 살필 줄 모르고 외형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즉, 영적초보자들은 오로지 보이는 것들만 중요시 여겨서 사람의 단편적인 면만을 보며 내면에 담긴 성령을 볼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1:13)

Is Christ divided? was Paul crucified for you? or were ye baptized in the name of Paul?

 

기름부음 받은 자의 육신은 여럿일 수 있지만 기름부음자체는 나눠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셨으므로 육신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바울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주지 않은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세례 주는 주체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뜻)

요약하자면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이 임한다는 말과 같은데 어찌 육신에 초점을 맞추느냐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바울의 보충 설명이 나옵니다.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고전1:14)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1:15)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전1:16)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주지 않았다고 13절에서 말했는데 세례 받은 사람만 해도 여럿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보의 뜻은 “곱슬곱슬하다” 이고 가이오의 뜻은 “기쁨”이므로 마음이 유연(柔軟)하고 기뻐할 줄 아는 이에게 바울이 세례 줄 수 있다는 뜻이지요.(14절)

즉, 경직된 마음과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에게는 성령의 불씨를 전해줄 수 없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성령의 가르침으로 충만하여 기뻐할 줄 아는 이는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됨으로 말이 아니라 그 말씀의 속뜻을 받아들일 줄 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누구도 바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한다 했습니다.

16절의 스데바나의 뜻은 “면류관을 쓰다”이고 면류관(冕旒冠)의 뜻은 왕관을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예수를 조롱할 때 로마병사가 씌워준 가시관을 가리킵니다.

구도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 가시관을 쓰듯이 고난과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바울이 세례를 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보면 세례는 육신이 주고받지만 세례 주는 이는 성령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

 

하나님과 하나 된 이(그리스도)가 보냈으니 당연히 보혜사, 즉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가르침이 육신의 두뇌로 말미암지 않고 성령에 힘입어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거듭남의 가르침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했는데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례나 가르침을 주는 이의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재하신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거지요.

육에 초점을 맞추면 우상숭배에 머물게 되고 성령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성령의 불씨가 심어지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씀하셨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