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세 번째 날도 어김없이 성경 이곳저곳의 말씀이 인용되었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오가며 인용된 성경말씀 모두는 오로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한 가르침이라 말씀하셨으니 그 내용을 중심으로 성경을 상고(相考)해보고자 합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
Remember these, O Jacob and Israel; for thou art my servant: I have formed thee; thou art my servant: O Israel, thou shalt not be forgotten of me.
야곱의 뜻은 “발뒤꿈치를 잡는 자”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입니다.
구약을 읽어본 이들을 알겠지만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한 끝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전쟁에서 시험을 이겨낸 구도자를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잊힌바 되지 않는다고 했지요.(thou shalt not be forgotten of me)
만약 이러한 해석을 낳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인간이 씨름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구약은 구약시대에 필요한 말씀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성경말씀은 조금도 틀린 바 없이 삶에 적용이 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 바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오늘날 이스라엘이 나라를 재건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말하지만 속 깊은 뜻을 살펴보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에서와 다툼을 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육간의 전쟁을 비유한 겁니다.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영육간의 갈등을 가리키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사야서는 창세기 내용에 담긴 속뜻을 알고서 기록된 것입니다.
이 같은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영혼의 앞날이 이러한 성경해석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여 나라를 세운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뛰어난 점을 말씀하셨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두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유명영화사 대부분이 유대인들 소유이며 은행가를 비롯하여 방송국 대표자들의 상당수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볼 때 오늘날의 각종 언론은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하며 그들이 만든 영화나 보도 자료들을 통해 우리역시 알게 모르게 세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모두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6백만 명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알기로 히틀러가 패망직전부터 가스실을 운용하여 유대인을 학살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압니다.
가스실을 운용한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그곳에서 밤낮으로 사람을 죽인다 해도 단기간에 50만 명을 죽이기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 학살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이 만든 영화나 보도 자료를 보고 액면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액면대로만 보게 되면 성경의 근본목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우리 영혼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인용한 창세기 말씀 역시 속뜻과는 다른 해석을 낳게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성경을 아는 모든 이들은 아브람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기를 네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하게 한다 했으므로 야곱에 대해 또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지만 이사야는 야곱을 등장시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잊지 않는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언급한 이유는 창세기의 내용에 담긴 뜻이 어떠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은 뒤로한 채 무조건 이스라엘이 하나님말씀을 증거 한다 말하고 여호와의 증인이 이스라엘 민족이라 말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러한 주장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복을 내리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저주를 내리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합당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성경속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만들게 되지요.
무엇보다도 이 같은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되게 만들어 우리의 영혼이 영생을 얻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하듯이 성경을 속뜻을 살펴가며 읽어야하며 인명이나 지명에 담긴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아브람의 뜻은 “아버지는 높으시다”이고 훗날 바뀐 이름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해석하면 하나님을 높이던 사람이 육적속성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입성하게 되면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해석을 낳지 못하는지라 자꾸만 이스라엘의 회복을 언급하게 되고 예수의 재림을 말하게 되는 겁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인데 어째서 또다시 예수가 재림해야 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한 죄로 무려 2천년동안 저주를 받았다면 예수탄생 이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난과 시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이 같은 주장은 마치 내가 당하는 고통이 과거 내조상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나 진배없습니다.
예를 들어 천 년 전 어느 유대인가정에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조상이 어떤 짓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고 살아갈 것인데 천년 후 사람들인 우리가 너희가 그토록 고생한 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는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연구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만들기 위해서인데 그 목적은 상실해버리고 또다시 미망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제 이틀을 남기고 있는 강연회 기간 동안 또다시 이런 일을 언급하게 되겠지만 약식이나마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구절을 보며 보고서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Therefore the Lord himself shall give you a sign; Behold, a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눅1:30)
And the angel said unto her, Fear not, Mary: for thou hast found favour with God.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And, behold, thou shalt conceive in thy womb, and bring forth a son, and shalt call his name JESUS.
상고(相考)에 상고(詳考)를 거듭하면 영생의 하늘이 보일 거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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