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덜하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나더러 고기를 먹어야한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몸을 생각해서 고기를 먹어야한다는 말에 언제나 나의 대답은 먹지 않아도 건강하다는 것이었지요.
풀만 먹는다고 해서 힘을 쓰지 못하거나 일을 하는데 있어 지장을 초래한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도 고기 먹는 사람들만큼 성과를 내고 있으므로 그들의 걱정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고기 먹기를 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3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도 건설현장에서 남들만큼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충고를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의학적 지식을 습득해서인지 아니면 본인의 직업이 의사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고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보고서도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속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면 본인의 확고한 믿음 때문이지요.
이러한 점을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은 내가 살아나오는 동안 저질러 놓았던 수많은 악행(?) 때문입니다.
채식과 명상을 시작하기 오래전 술을 마시지 못하는 친구에게 남자가 술을 마시지 못하면 남자라고 볼 수 없다며 술을 마시게 만들었고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믿는 종교를 믿도록 강요했던 전적이 있는지라 이 같은 강권의 목소리가 나에게 늘 주어지는 겁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과응보의 법칙아래 일어나는 일로서 한 치의 오차 없는 하나님의 손길 탓입니다.
이 같은 일을 내가 멈출 수 있었던 것은 채식과 명상을 시작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식과 명상을 해보니 너무나 좋았기에 친구들을 불러 식사를 한 적이 있었지요.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는 대체육(代替肉)이 흔치 않았으며 대만에서 수입한 대체육과 무알콜 맥주를 대접하였는데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습에 다시는 권하지 않게 된 겁니다.
모든 것이 인연의 소치라 채식과 명상을 하는 것도 인연이 있어야 하며 종교를 선택하는 것도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할 수 있으며 시절인연이 도래해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아는지라 나 같은 경우 가족들에게도 내가 가는 길을 권하지 않으며 본인에게 맞는 종교를 선택하여 신앙생활 할 것을 권합니다.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말고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선택을 하라는 거지요.
아마도 어떤 이들은 의아(疑訝)해할지 모릅니다.
명상과 채식을 30년 동안 지켜 나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교회나 명상단체를 선전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종교나 선택하라 말하기 때문에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나 여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므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눅17:20)
And when he was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눈을 감고 조용히 내면으로 들어가면 빛이신 성령을 보게 됨으로 예수님은 이 같이 말해놓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안으로 보기에 하나님왕국은 목격되는 것이 아니라고(not with observation) 했으며 방향성을 상실한 성령이기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한 겁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적용할일이라 말하겠지만 그렇게만 여길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일반인들과 구분되었다고 여기는(바래새인의 뜻: 분리된 자, 거룩한 자)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시험하는 이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므로 모든 사람들 안에 성령이신 하나님이 들어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누군가는 성령이 임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인지 알아야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눅18:29)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18:30)
Who shall not receive manifold more in this present time, and in the world to come life everlasting.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위해 재산을 바치게 되면(헌금을 많이 하면) 영생을 얻는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예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의 뜻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이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일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길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앞서 예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 왕국이 있다 했으므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위하는 일이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인 동시에 예수를 위하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성령의 내재하심을 경험한 이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성령이 드러난 예수를 위한일이 영생을 얻거나 상속받을수 있는 길이라 기록해놓은 것이며 육신예수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되기에 마가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일로서 영생을 얻거나 상속 받는다 기록해놓은 겁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에 관한 문제로서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예수의 육신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예수가 재림을 해야 한다 여기게 되는 것이며 성령에 초점을 맞추면 이미 우리의 내면에서 예수가 성령으로서 되살아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육신에 초점을 맞추면 무엇을 먹느냐를 걱정하게 될 것이며 영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먹는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까닭이 없습니다.
30년 동안 풀만 먹고서도 멀쩡하게 잘살아간다면 고기를 먹어야만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며 교회를 다니지 않고서도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했다면 영생을 얻었다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중생들을 인정할 줄을 모릅니다.
본인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살아가지요.
이러한 이유로 30년 전 가까운 친구들의 손을 놓은 것처럼 믿지 않는 이들의 손을 놓아버리려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손을 놓는다는 뜻입니다.
받은바가 없으니 부담될 것도 없고 준적도 없으니 돌려받을 것도 없으며 신세진 일은 더더욱 없으니 홀가분하기 그지없다는 말씀을 드리며 누군가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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