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생은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것.

배가번드 2025. 7. 2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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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지려면 육신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난시간 배웠습니다.

이 말씀이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며 어려운 것 같지만 쉽기도 합니다.

삶의 목적을 하늘에 두고 있는 이들은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물질세상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매달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육신의 속성이 무너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살아있던 2천 년 전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오늘날에야 말해무엇하겠습니까.

성령이신 예수를 영접한 바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우리가 영적인 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과거의 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성령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인바 오늘도 변함없이 과거 바울의 생존 시대로 돌아가 가르침을 청해보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갈4:16)

Am I therefore become your enemy, because I tell you the truth?

 

성령의 가르침은 언제나 물질 세상에 반한다는 것을 원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된 진리의 말씀은 육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이롭게 함으로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에게는 원수처럼 여겨질 거라는 뜻이지요.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시류에 부합한 가르침을 전하는 목자들도 상당수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갈4:17)

They zealously affect you, but not well; yea, they would exclude you, that ye might affect them.

 

성령의 가르침이 아니라 육적이고 물질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이 형제들에게 열성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zealously affect you) 좋은 뜻이 아니라고 하며(not well) 진리의 말씀을 배척(排斥)하여(would exclude you) 그들에게 영향 받게 한다 했습니다.(that ye might affect them)

오늘날로 말하자면 열변을 토하며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성령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세상 적이고 물질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본인들의 사사로운 목적으로 인해 사람들을 붙들어 두려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가르침조차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괜찮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갈4:18)

But it is good to be zealously affected always in a good thing, and not only when I am present with you.

 

비록 그들의 가르침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이라 해도 너희들이 좋은 것이라 여기는 것이라면(in a good thing)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거라고(good to be zealously affected) 합니다.

바울이 함께 할 때뿐만 아니라고(not only when I am present with you) 했으니 성령으로 함께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본인들이 좋게 여긴다면 좋게 작용할거라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자신들의 목적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것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주문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My little children, of whom I travail in birth again until Christ be formed in you,

 

나의 자녀들아(y little children)했으니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으며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in you)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until Christ be formed) 거듭나는(in birth again) 수고를 할 거라(I travail)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말씀인즉, 성령으로 거듭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줄 거라는 뜻이지요.

다른 각도로 조명해보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아야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바울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갈4:20)

I desire to be present with you now, and to change my voice; for I stand in doubt of you.

 

바울이 지금당장 너희들과 함께 하고자(to be present with you now) 요구한다 했으며(I desire) 목소리를 바꾸겠다(to change my voice)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너희를 의심하는 가운데(in doubt of you) 서있기 때문이라고(for I stand) 합니다.

즉, 성령의 입장에서 보건데 형제들이 영적이지 못하고 물질적인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도 상당수가 영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교회당을 다니며 열심히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육적이고 세상 적인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거지요.

이 같은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며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당연한 겁니다.

오죽하면 바울이 형제들을 의심하는데 서있다는 표현을 했겠습니까.

아마도 다수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 말하겠지만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보면 백이면 백 모두가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자신의 마음 안에서 되살아나지 않았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마다 예수가 재림하기를 바라게 되며 역사하심을 믿는다 말하는 겁니다.

정말 성령이 우리 안에서 되살아났다면 예수처럼 말하며 행동하게 됨으로 예수의 재림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해주어도 본인들이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으나 한 가지는 말하고자 합니다.

구원은 영생이고 영생은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것과 마찬가지 이므로 하나님과 동격입니다.

그러므로 영에 초점이 맞춰지면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것이고 육에 초점이 맞춰지면 본인이 지옥에 머물고 있음이 보이게 됩니다.

이모든 것이 믿음 안에서 일어남으로 자신 영혼의 앞날은 본인의 믿음에 달렸다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