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여종의 아들은 계승자가 될 수 없다.

배가번드 2025. 7. 21.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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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4장의 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시간 바울로부터 그리스도가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형성될 때까지 가르침을 받아야한다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완성에 이르지 않은 영혼들은 당연히 바울과 같은 영적 스승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설령 성령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어린 영혼들을 이끌어 주기위해 스스로를 낮추어 배움의 자세에 임할 겁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이 제한되고 낮은 곳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한없이 넓어진다는 점을 알게 되기에 성경은 약속의 땅을 가나안(뜻: 낮은 지대)이라 표기(表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자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높은 곳에 군림하는 자는 재림예수가 아니요 낮은 곳에서 봉사와 헌신을 즐겨하는 이에게 빛이신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과연 그러한지 바울의 입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갈4:21)

Tell me, ye that desire to be under the law, do ye not hear the law?

 

지금 이 말씀은 세상 법에 종속되어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겁니다.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고 한 것은 율법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갈4:22)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갈4:23)But he who was of the bondwoman was born after the flesh; but he of the freewoman was by promise.

 

바울은 창세기 16장의 내용을 인용하여 성경에 담긴 뜻을 풀어내고 있으며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육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뜻하므로 하나는 육체를 따라났다(born after the flesh) 했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여인에게서 났다(of the freewoman)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바울은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말해줍니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갈4:24)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갈4:25)

 

시내산의 뜻은 ‘가시나무 무성한곳’이며 하갈의 뜻은 ‘이주, 도망’입니다.(24절)

그리고 아라비아의 뜻은 ‘사막, 초원’이며 예수살렘의 뜻은‘평화의 터전’으로 성전을 가리킵니다.(25절)

시내산과 예루살렘이 같은 곳이라 했으니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명암이 달라진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하갈은 영적인 삶으로부터(예루살렘) 도피하여 육적인 삶을 살았으므로 갖은 풍파 속에서(시내 산) 육신을 성전(예루살렘) 되게 만들지 못하고 종을 낳은 사람에 비유된 겁니다.

반면에 영적인 길을 걷는 이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6)

But Jerusalem which is above is free, which is the mother of us all.

 

예루살렘을 의인화 시키고 있으며 높은 곳에 있다 말합니다.(Jerusalem which is above)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들면 성령을 잉태하게 됨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다시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성경의 내용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갈4:27)

 

지금 이 말씀은 성령의 임하심은 육신과는 별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남편 있는 여인보다 홀로 있는 여인의 자녀가 많다고 한 것은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4:28)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But as then he that was born after the flesh persecuted him that was born after the Spirit, even so it is now.

 

이삭의 뜻은 ‘웃음, 비웃음’이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자녀들은 사람들로부터 웃음과 비웃음을 한 번에 받는다는 뜻이지요.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웃음을, 육적인 사람들로부터는 비웃음을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29절에서 육체를 따라난 자가(born after the flesh) 성령을 따라난 자를 박해한다(after the Spirit) 한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바울은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격려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갈4:30)

Nevertheless what saith the scripture? Cast out the bondwoman and her son: for the son of the bondwoman shall not be heir with the son of the freewoman.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4:31)

So then, brethren, we are not children of the bondwoman, but of the free.

 

30절 말씀은 육적인 삶에 노예가 되어 그로인해 얻은 소유물들을 배척하라는 뜻입니다.

진정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되려면 물질적이고 육적인 욕심들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여종의 아들은 자유로운 여인의 아들과 더불어 계승자가 될 수 없다(not be heir) 한 겁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받으려 한다면 이것은 기본적인 일이기에 바울은 31절에서 우리가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not children of the bondwoman) 자유로움의 자녀라(but of the free) 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자유는 성령을 가리키며 바울로부터 성령의 불씨를 전해 받은 형제들을 가리킵니다.

가르침을 통해 성령의 불씨가 심어진 자들이 어째서 물질적이고 육적인일에 관심을 기울이느냐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대자유의 자녀가 되기를 소원하며 갈라디아서 4장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