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전하는 자와 듣는 이가 둘이 아니다.

배가번드 2025. 8. 3.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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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에는 구약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구절이 몇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좋은 말씀이라 여기게 되지만 속뜻을 살펴보면 성령과 하나 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지요.

그러므로 오늘은 내면 깊숙이 잠들어있는 성령을 깨우는 심정으로 성경을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6:4)

But let every man prove his own work, and then shall he have rejoicing in himself alone, and not in another.[KJV]

Each one should test his own actions. Then he can take pride in himself, without comparing himself to somebody else[NIV]

 

그의 자신에 일이라(his own work) 한 것은 자신 안에 내재한 진정한 영혼, 즉 성령을 가리킵니다.

육신 안에 담겨있는 본연의 자아(自我)인 성령이 하는 일을 증명하라는(prove his own work) 말은 성령이 자신의 육신을 주관하고 있음을 인정하라는 뜻이지요.

그리하면(and then) 그자신의 외로움을(in himself alone) 기뻐할 것이며(have rejoicing) 다른 것들을 기뻐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not in another)

이 말씀은 성령이 고립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각자의 몸 안에 내재함을 깨닫게 되면 다른 곳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으려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NIV]성경은 각자가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라 했으며(Each one should test his own actions) 그러면 다른 이와 비교 없이(without comparing himself to somebody else) 자신 안에서 자랑스러움을 취할 수 있다(he can take pride in himself) 한 겁니다.

[KJV]성경이나 [NIV]성경 모두가 성경의 내재하심을 알라는 말을 하고 있으며 이렇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6:5)

For every man shall bear his own burden.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5절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동일한 내용이므로 함께 올렸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다시피 예수께서는 본인의 육신을 부인하고 본인의 삶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감내(堪耐)하고 성령을 따르라는 말을 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바울역시 예수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 같은 가르침이 더욱더 가슴에 와 닿게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Let him that is taught in the word communicate unto him that teacheth in all good things.

 

여기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him that is taught) 육신을 가리키며 가르치는 이는(him that teacheth) 성령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한 것들 안에서(in all good things) 가르친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목회자들의 말씀을 들을 때도 성령의 임하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일반인들조차 좋은 말을 할 때면 성령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게 되지요.

좀 더 인식의 범위가 확장을 하게 되면 삼라만상 속에 담긴 빛이신 성령을 보게 되므로 모든 것들 안에 있는 선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가 교감이 이루어지게 됨으로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이가 둘이 아니게 됩니다.

이정도가 되면 저절로 사람이 바뀌게 되어 행동거지가 달라짐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

As we have therefore opportunity, let us do good unto all men, especially unto them who are of the household of faith.

 

앞서 말한 대로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이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을 할 때(us do good unto all men) 기회가 온 것처럼(As we have therefore opportunity) 여기라고 했으며 특히 믿음에 가정의 일원(一員)들에게 하라 한 겁니다.(who are of the household of faith)

이 말씀은 예수님의 다음말씀과 정확히 일치되는 가르침입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12:3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12:37)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12:38)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12:39)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12:40)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있게 생각해볼 점은 이웃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할까 입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이웃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개중에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무리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특히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라는 말을 한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은 이용하려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별을 하게 만듭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인연정리가 되며 저절로 옮겨가게 됩니다.

육신이 구태여 말을 하지 않더라도 주변 환경이 변화를 일으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진다는 말입니다.

다른 이의 경우에는 내가 알 수 없으나 내 인생에서는 이러한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도 그러했고 호주서 지냈던 것도 그러합니다.

지금 내가 수원에서 살게 된 것도 그러한 일의 연속이며 죽는 순간까지 이러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주변에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인연정리가 성령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일반인들이야 모르겠지만 영혼의 세계를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 사람과의 만남은 무척 중요하며 그로인해 자신영혼의 앞날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가 자신을 도로 데리고 갈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본인 스스로의 내면에 성령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지라 지속적으로 성령의 불씨가 내면에서 살아나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본인 스스로가 자신영혼을 책임질 만큼 성숙되지 않았다면 종교를 선택하여 신앙생활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리며 되새김의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