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하나 되었거나 말았거나 성령은 항상 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령의 불씨로서 다시 되살아나느냐 다시 잠들어 버리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것은 불을 피우는 것과 같아서 믿음이 강하면 활활 타오를 것이고 약하면 불씨가 시들거리다가 종내는 꺼져 버립니다.
그래서 성령을 되살아나게 만들려면 강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성령을 되살릴 수 있을지 바울로부터 배워보겠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빌2:19)
But I trust in the Lord Jesus to send Timotheus shortly unto you, that I also may be of good comfort, when I know your state.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빌2:20)
For I have no man likeminded, who will naturally care for your state.
직역을 해보면 주예수안에서(in the Lord Jesus) 너희에게 디모데를 속히 보낼 것을(shortly unto you) 내가 믿는다(I trust) 했으며 내가 너희의 상태를 알 때(when I know your state) 내가 좋은 위로가 된다고(I also may be of good comfort) 합니다.(19절)
액면대로 보면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속뜻을 살펴보면 달리 해석됩니다.
디모데의 뜻은 ‘하나님을 공경하다’이므로 특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이 말씀은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하신 것으로 내재하신 성령은 우리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믿고 있는지를 성령이 아심으로 그때가 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지요.
그래서 20절에서 한마음이 되어(likeminded) 너희의 상태를(your state) 자연스럽게 보살필(naturally care for) 이가 나에게 없다(I have no man) 한 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성령과 하나 될 것인데 그런 이가 없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바울의 이 같은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2:21)
For all seek their own, not the things which are Jesus Christ's.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2:22)
But ye know the proof of him, that, as a son with the father, he hath served with me in the gospel.
모두가 그들 자신의 것만 구하고(all seek their own) 예수그리스도의 것은(Jesus Christ's)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21절)
즉, 성령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들만 구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22절에서 너희가 아버지와 함께하는 아들과 같이(as a son with the father) 복음 안에서(in the gospel) 나와 함께 봉사한(he hath served with me) 그의 증거를 안다 했습니다.(know the proof of him)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던 모르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하나님을 공경하는(디모데)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너희가 알지 않느냐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빌2:23)
Him therefore I hope to send presently, so soon as I shall see how it will go with me.
그러므로 그를(Him therefore) 내가 곧 보내기를 희망한다(I hope to send presently) 했으며 될 수 있는 대로(so soon as)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I shall see how it) 나와함께 갈 것이다(will go with me) 했습니다.
사람을 보낼 것 같으면 그냥 보내면 되는 일인데 이렇게 어렵게 말해놓은 것은 분명히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것이 맞는 겁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둘이 아니고 성령을 믿는 것이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자신의 말이 곧 성령의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인식상태에 도달해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이며 그때가 되어야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빌2:24)
But I trust in the Lord that I also myself shall come shortly.
나또한(I also) 나 자신이 속히 가게 될 것을(myself shall come shortly) 주안에서 믿는다고 합니다.(I trust in the Lord)
성령이 바울의 입을 통해 말을 하기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령으로서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아는 이에게 성령이 임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온전히 영적인 일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기에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빌2:25)
Yet I supposed it necessary to send to you Epaphroditus, my brother, and companion in labour, and fellowsoldier, but your messenger, and he that ministered to my wants.
에바브로디도의 뜻은 ‘매력 있는, 사랑스러운’으로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영적인 것만으로는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알기에 성령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주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돕는 사람으로 묘사한 겁니다.(he that ministered to my wants)
내재하신 성령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무엇이건 주신다는 말입니다.
영육이 하나 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이 필요하기에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의 형제이자 수고를 함께하는 전우로(companion in labour, and fellowsoldier)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령에 대적하는 원수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것들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기에 불가피하게 비유로서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일을 일찍이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2)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을 원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갖는 마음이지만 믿음아래 놓인 이들은 욕심의 마음을 가지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해놓은 겁니다.
다른 이의 경우에는 내가 알 수 없으나 영적인 길을 걷는 동안 항상 확인하였다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을 기약합니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인 길을 걷는것은 고귀한 일이다. (0) | 2025.10.01 |
---|---|
물질적인 축복도 성령을 위한것. (0) | 2025.09.30 |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라. (7) | 2025.09.27 |
육신을 부정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라. (2) | 2025.09.26 |
은혜를 주셨으니 고난도 받게 한다. (14) | 2025.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