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기에 앞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전서를 보면 디모데와 함께 아볼로를 보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액면대로 보자면 그야말로 뜬금없이 나온 인물입니다.
이야기의 전개상 등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속뜻을 알라는 뜻에서 이지요.
그러므로 이름의 뜻을 알아야 해석이 됩니다.
아볼로의 뜻은 ‘침략자, 파괴자’로서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에게(디모데)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직은 그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해놓은 것인데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에바브로디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인 길에 들어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관심을 영적인 일에 두게 됨으로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일들을 등한시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심한 가난과 고통 속에 허덕이게 되어 신앙의 뿌리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주변에 고행을 하기위해 극단적인 금식과 기도로 인해 가정파탄을 겪는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태에 놓은 거라 볼 수 있지요.
그래서 바울은 그런 이들을 경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며 에바브로디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 등장시킨 인물입니다.
그러면 지난시간에 이어 오늘 또다시 매력 있고 사랑스럽다는 뜻을 가진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연구해보겠습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빌2:26)For he longed after you all, and was full of heaviness, because that ye had heard that he had been sick.
에바브로디도가 너희모두를 열망했고(he longed after you all) 무거움으로 가득 찼다고(was full of heaviness) 합니다.(26절)
그 이유는 너희가 그가 병들었음을 들었기 때문이라 했지요.(ye had heard that he had been sick)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병든 것을 멀리 있는 교회성도들이 안다고 해서 근심으로 가득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당연히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것이며 앞서 말한 대로 에바브로디도를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으로 봐야하는 거지요.
영적인일에 너무나 몰입을 하게 되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일을 등한시하게 되므로 그가 병든 것에 비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2:27)
For indeed he was sick nigh unto death: but God had mercy on him; and not on him only, but on me also, lest I should have sorrow upon sorrow.
정말 그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병이 들었다고 합니다.(indeed he was sick nigh unto death)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자비롭게 하실 뿐 아니라(ut God had mercy on him) 바울이 근심위에 근심을 가지지 않도록(lest I should have sorrow upon sorrow) 자비롭게 하셨다(but on me also) 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하신 것으로 내재하신 성령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안다는 뜻입니다.
특히 영적인 길을 걷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을 근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멀쩡한 가정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거나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 등의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 자신의 에고가 발동한거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빌2:28)
I sent him therefore the more carefully, that, when ye see him again, ye may rejoice, and that I may be the less sorrowful.
너희가 그를 다시 볼 때(when ye see him again) 기뻐하고(ye may rejoice) 내가 근심을 적게 하기 위해(I may be the less sorrowful) 그를 더욱 신중하게 보낸다 했습니다.(I sent him therefore the more carefully)
처음 우리가 영적인 길을 걷게 되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일들을 등한시(等閑視) 합니다.
성경은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들을 원수로 묘사하고 있으므로 이 말씀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지요.
그러나 진정 성령이 되살아나면 보다 신중하게 세상을 대하며 물질과 육신적인 것들조차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바울은 신중하게 보낸다는 표현을 한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빌2:29)
Receive him therefore in the Lord with all gladness; and hold such in reputation: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들이되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하라했으니 어디까지나 초점을 성령에 맞추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명성을 억제하라 한거지요.(hold such in reputation)
이 말씀은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뜻으로 아무리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져도 목적지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 이 내용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명성을 떨치라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해석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왜 이렇게 해석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2:30)
Because for the work of Christ he was nigh unto death, not regarding his life, to supply your lack of service toward me.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for the work of Christ ) 그가 죽음에 이르렀기(he was nigh unto death) 때문으로, 그의 삶을 돌보지 않았고(not regarding his life) 나를 향한(toward me) 너희 섬김의 부족함을(your lack of service) 제공하기 위해서라고(to supply) 합니다.
이 말씀인즉, 구도자에게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지는 것은 성령을 위한 섬김을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자신 삶을 돌보지 않고 영적인일에 매진을 했기 때문에(육적속성이 죽음)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으며(만족하는 마음)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지는 것은 영적인 일을 위해서라는 말이지요.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알바 아니지만 내 눈에는 이렇게 보인다는 말씀을 드리며 빌립보서 2장의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0) | 2025.10.02 |
---|---|
영적인 길을 걷는것은 고귀한 일이다. (0) | 2025.10.01 |
강력한 믿음이 성령을 되살린다. (5) | 2025.09.29 |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라. (7) | 2025.09.27 |
육신을 부정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라. (2) | 2025.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