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떤 목회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기적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오병이어가 있으며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났다는 것과 포도주를 물로 만들고 물위를 걸었다는 등의 일이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일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있으며 한걸음 나아가 영어성경을 비교하고 히브리어를 대비하여 연구해보면 속뜻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목회자 가운데 예수의 기적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성경의 속뜻을 모르고 있으며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일에 대해 연구해보겠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눅1:26)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눅1:27)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눅1:28)
And the angel came in unto her, and said, Hail, thou that art highly favoured, the Lord is with thee: blessed art thou among women.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육(6)은 거듭남의 숫자이며 가브리엘의 뜻은 ‘하나님의 영웅’이고 갈릴리의 뜻은 ‘순환, 고리, 원’등이며 나사렛은 ‘파수꾼, 지켜보다’ 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듭남으로 인해(3×2=6) 이 땅에 실현된 것이 예수라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웅(가브리엘)이라는 표현을 했으며 이 땅으로 돌아온(순환, 원) 파수꾼(지켜보는 자=하나님) 이라고 한거지요.
그리고 27절에 등장하는 다윗의 뜻은 ‘사랑받는 자’이고 요셉의 뜻은‘하나님께서 더 하신다’이며 마리아의 뜻은 ‘가장 높으신 분, 존귀한 분’등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보면 성령이신 예수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존귀에 처해진 이에게 잉태되어 났다는 뜻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 사랑받을 짓을 하고 존귀하다 칭찬받을 만한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28절에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들어갔다(the angel came in unto her)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31절을 보면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예수라 하라 했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예수가 구원자라는 점을 소개하고 있다고 봐야 하며 액면대로 볼 것은 아닙니다.
이와 동일한 뜻을 가진 내용이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사7:15)
Butter and honey shall he eat, that he may know to refuse the evil, and choose the good.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므로 이 내용은 액면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지요.(14절)
그러므로 이 내용은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이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임마누엘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므로 이러한 해석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약에는 임마누엘이라 적혀 있는데 어째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는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구약을 믿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악을 거부하고(refuse the evil) 선을 택할 줄(choose the good) 알면 엉킨 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라 했으니 이는 분명 성령을 깨닫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에서는 육(肉)을 악으로 규정짓고 선은 하나님이신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라 적고 있으므로 육을 거부하고 영(靈)을 선택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거지요.
그리고 엉긴 젖은 ‘헤므아’를 해석한 것으로 두꺼운 우유를 뜻하는지라 영어성경은 버터로 적고 있는데 이는 저주를 뜻합니다.
순수하지 못한 우유이기에 저주로 해석되는 것이며 꿀은 축복을 의미하는 겁니다.
즉, 아이가 성장하여 세상적인 일보다 영적인 일을 선택하게 될 때 비로소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유자체는 깨끗하고 순수하며, 변질된 것이 버터이지만 이 또한 사람이 먹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다고 해서 무조건 악하다 여겨서는 안되는 거지요.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기 위해 육을 악한 것으로 규정은 짓지만 육이 없다면 영이 세상에 드러날 수가 없으므로 둘은 한 몸 안에서 작용하는 형제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음양의 조화가 이 세상을 만들어 내었듯이 우리 안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으며 선악이 항상 함께 하는 거지요.
그래서 시편을 통해 하나님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옆에 있으라.’ 한 겁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성령을 영접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무조건 영생을 얻었다고 큰소리를 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겸손 되게 배워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나빠할 기독교인들이 많겠지만 솔직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그리스도예수를 믿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거지요.
본인이 진정 성령과 교통하고 있고 영접했다면 성경에 담긴 속뜻은 쉽게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것이 사실이라 말한다면 육적이고 물질적인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겁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성경 몇 구절을 더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Jesus saith unto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man cometh unto the Father, but by me.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 that believeth on me, the works that I do shall he do also; and greater works than these shall he do; because I go unto my Father.
성경을 액면대로만 보면 꼼짝없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6절에서 자신을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했으므로 예수가 재림해야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12절에서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보다 더 큰일조차 할 수 있다 했으므로 예수를 육신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빛이신 성령으로 인식했을 때 여러 가지 모순들이 일시에 해소된다는 말씀을 드리며 주일 아침의 문을 활짝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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