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다.

배가번드 2025. 10. 3.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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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주를 빌립보서 3장과 함께 시작해보겠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3:1)

Finally, my brethren, rejoice in the Lord. To write the same things to you, to me indeed is not grievous, but for you it is safe.

 

바울이 동일한 가르침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번거롭거나 슬프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러한 반복된 가르침이 형제들을 안전하게 한다는(for you it is safe) 뜻입니다.

항상 영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언제 육적이고 물질적인 쪽으로 휩쓸릴지 모른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3:2)

Beware of dogs, beware of evil workers, beware of the concision.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3:3)

 

2절에 개들을 삼가라는 말은 본능에 충실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행악 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은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뜻이며 절단하는 일을 삼가라 한 것은 겉치레를 중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concision의 뜻은 절단이지만 여기에서는 손 할례 당을 가리킵니다.(손 할례당=사람의 손으로 할례를 함)

할례가 마음으로 이루어져야하는 것인데 육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3절에서 우리가 할례파라 한 것이며(we are the circumcision)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숭배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숭배하지만 무조건적이 아니라 내재하신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예수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현된 인자라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서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당시 유대사회의 잘못된 믿음을 꼬집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육신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빌3:4)

Though I might also have confidence in the flesh. If any other man thinketh that he hath whereof he might trust in the flesh, I more:

 

바울역시 육신을 신뢰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만약 다른 이가 육신을 신뢰할 것이 있다 여길 경우 자신은 더욱 그렇다했으니 육신에 초점을 맞춘다면 바울이 더 심했었다는 말이지요.

바울의 과거가 그러했다는 말이므로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3:5)

Circumcised the eighth day, of the stock of Israel, of the tribe of Benjamin, an Hebrew of the Hebrews; as touching the law, a Pharisee;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6)

Concerning zeal, persecuting the church; touching the righteousness which is in the law, blameless.

 

구약에 기록된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5절)

속뜻을 보게 되면 8은 하나님이 하신 일(7)을 완전히 깨닫고 첫(1)출발을 한다는(7+1=8) 의미인 동시에 사람이(4) 인자로서(4) 거듭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4×2=8)

그리고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이고 베냐민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이며 히브리의 뜻은 ‘가로지르다, 건너다’, 바리새의 뜻은 ‘구별된 자’입니다.

이렇게 속뜻이 따로 있음을 모르고 바울은 그 당시 유대인들과 다름없이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6절에서 열심에 관하여는(Concerning zeal) 교회를 박해했다 했으며 율법으로서(which is in the law) 정의에 접촉함에(touching the righteousness) 있어서는 떳떳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는 당시 유대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복음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그리스도 교회(敎會)를 가리킵니다.

속뜻을 모르고 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을 때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성령을 영접한 후로는 속뜻을 알게 되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빌3:7)

But what things were gain to me, those I counted loss for Christ.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

 

무엇이든지 내게 득이 되던 것을(what things were gain to me) 그리스도를 위해서는(for Christ) 손해되는 것으로 셈했다고 했습니다.(7절)

이 말씀인즉, 그리스도(성령)에 반하여 육신을 이롭게 하는 것들 모두는 해가 된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8절에서 의심할 여지없이(Yea doubtless) 내주 그리스도 예수(Christ Jesus my Lord) 지식의 훌륭함을 위하여(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내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여긴다 했으며(I count all things but loss) 그를 위하여(for whom)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가지고(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그리스도를 차지하기위해(that I may win Christ) 그것들을 똥으로 여긴다고(do count them but dung) 합니다.

즉, 성령을 위해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들 모두를 포기하였으며 오로지 성령과 하나 되기만 원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단한가지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9)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성령과 하나 되는 것을 그(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발견되는(be found in him)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 육신의 율법에 따른 정의로움이 아니라(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through the faith of Christ), 믿음으로 인한(by faith) 하나님의 것이라(which is of God) 했으니 육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빌립보서 3장의 첫 번째 시간을 마쳤으니 두 번째 시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