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바울의 입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맡은바 소임이 무엇이든지간에 성령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함을 알게 되었지요.
항시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이와 같이 하라 했으므로 성령 안에서 모든 행위가 이루어져야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거나 관계없이 내재하신 성령에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간다면 성령과 연결되어 종내(終乃)는 영생을(영원한 해탈) 얻을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3:17)
Brethren, be followers together of me, and mark them which walk so as ye have us for an ensample.
나와함께(together of me) 신봉자가 되라(be followers) 했으며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 삼는 것(ye have us for an ensample)처럼 걷고 있는지(which walk so as) 그들을 표시하라(mark them) 했습니다.
이 말씀은 형제들로 하여금 자신의 추종자가 되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성령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걷고 있다면 그러한 흔적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도들 모두는 성령을 위해 목숨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데 과연 너희들도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거지요.
적어도 성령과 하나 되려면 실생활에서 그러한 흔적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입으로는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성령과 하나 된 사람처럼 살지 않는 사람을 위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For many walk, of whom I have told you often, and now tell you even weeping, that they are the enemies of the cross of Christ:
영적인 길을 걷는 많은 이들에게(For many walk) 여러 번 말했고(I have told you often) 지금도 눈물로서 말하거니와(now tell you even weeping) 그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고 했습니다.(they are the enemies of the cross of Christ)
육적속성을 죽이고 영적 부활을 하신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를 믿는다면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입으로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 뒤로 딴 짓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9)
Whose end is destruction, whose God is their belly, and whose glory is in their shame, who mind earthly things.)
영적이지 못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멸망이며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들의 배라 했으니 오로지 자신의 배불리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 안에 있다(glory is in their shame) 했으며 그들은 땅에 것들을 생각한다(who mind earthly things) 한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땅에 것들을 영광되게 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며 그들의 영혼은 멸망하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다시 말해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앞날은 결코 영광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For our conversation is in heaven; from whence also we look for the Saviour, the Lord Jesus Christ:
우리의 대화는 하늘에 있기 때문에(For our conversation is in heaven) 그곳으로부터(from whence)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the Lord Jesus Christ) 구원자로 찾는다고(we look for the Saviour) 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성령이라 생각하므로 대화가 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의 재림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하고 내적인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다음 내용이 올곧게 이해가 됩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Who shall change our vile body, that it may be fashioned like unto his glorious body, according to the working whereby he is able even to subdue all things unto himself.
그가 자신에게(unto himself)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으로(is able even to subdue all things) 그에 일하심에 따라(according to the working) 우리의 비도덕적인 몸을(our vile body) 그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만들어 주신다 했습니다.
이 말씀인즉, 예수그리스도가 성령이라는 뜻이며 그가 우리의 하찮은 몸을 성령과 하나 되게 하신다는 뜻이지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하여 예수가 재림하게 되면 모든 것들을 좌우지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내재하신 성령은 만물 안에 편재하고 있다는 말이며 우리가 온전히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입니다.
만약 예수가 재림해야 영생을 얻을것 같으면 지난 2천년동안 그러한 일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되므로 그 같은 가르침은 명백히 잘못된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바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Verily I say unto you, There be some standing here, which shall not taste of death, till they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his kingdom.
여기 서있는 몇 사람은(some standing here) 죽음을 경험하기 전에(not taste of death) 인자가(the Son of man) 그의 왕국 안에 오는 것을(coming in his kingdom) 볼 것이라 했으므로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의 왕국이란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든다는 뜻이며 그러할 때 성령과 하나 된다는 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살아있는 동안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들어 성령이 되살아나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둘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빌립보서 3장의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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