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성경속의 선지자들이 남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 성경인데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바라고 그러한 글들을 남겼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특히 바울은 신약의 반 정도를 작성했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며 사명감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에게 돈을 받은 일도 없고 누구로부터 칭찬을 바란 것도 아니며 오로지 형제들이 면류관을 쓰고 기뻐하는 것을 바란다고 했으니 이는 성령과 하나 된 이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요.
다 같이 성령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우리내면의 성령을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했던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믿음을 가지고 성경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이 성경속의 선지자들을 부활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오늘도 변함없이 내재하신 성령을 일깨우기 위해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청해보겠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Those things, which ye have both learned, and received, and heard, and seen in me, do: and the God of peace shall be with you.
무슨 일에든지 참되고, 정직하며, 공정하고 순수하라 했으며 어떤 일에도 사랑스럽고 평판을 좋게 하라고 합니다.(8절)
그런데 뒷부분에서 만약 어떤 선행이 있거나 칭찬이 있다면 이러한 일을 생각하라 했으니 평상시 행동을 성령에 입각(立脚)하여 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지난시간의 연장선에서 하신 것으로 성령이 깨어나면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which ye have both learned) 자신 안에서(in me) 보고 듣고(heard, and seen) 배우고 받아들인 것을(learned, and received) 행하라 한 겁니다.(9절)
여기에서 말하는 두 가지는(ye have both) 영육(靈肉)을 가리키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빌4:10)
But I rejoiced in the Lord greatly, that now at the last your care of me hath flourished again; wherein ye were also careful, but ye lacked opportunity.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한다 했으니 성령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의 주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므로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은 성령 외에는 없지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at the last) 나를 보살펴줌으로(your care of me) 다시 자라난다는(flourished again) 표현을 하고 있으며 너희가 이러한 점에 관심을 기울였으나(wherein ye were also careful) 기회가 부족했다(ye lacked opportunity) 했습니다.
바울 및 사도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아왔지만 그동안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지만 오늘 하신 말씀처럼 행동하면 성령이 되살아 날거라는 뜻입니다.
즉, 내재하신 성령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게 되면 성령과 하나 된다는 말이지요.
우리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령을 담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살피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말은 쉬우나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으므로 바울은 자신을 통해 배우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Not that I speak in respect of want: for I have learned, in whatsoever state I am, therewith to be content.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I know both how to be abased, and I know how to abound: every where and in all things I am instructed both to be full and to be hungry, both to abound and to suffer need.
욕구를 존중해서(in respect of want) 말하는 것이 아니라(Not that I speak) 내가 어떤 것에 있을지라도(in whatsoever state I am) 만족함이 함께 하는(therewith to be content)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for I have learned) 했습니다.(11절)
이 말씀은 어떠한 지경에 처해질지라도 만족할 수 있으며 육신의 욕구 따위는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한마디로 표현해서 성령과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낮아지는 것도 알고(how to be abased) 풍부해지는 것도(to abound) 안다고 했으며 모든 일들과 장소에서(every where and in all things) 굶주림과 채워짐(to be full and to be hungry), 풍부함과 필요에 시달리는(to abound and to suffer need) 점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고(I am instructed) 한 겁니다.
이는 성령과 하나 된 사람의 특징으로 어떤 경우에도 완벽을 본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육신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한없이 낮출 수도 있고 빛이신 성령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더없이 높아 질수도 넓어질 수도 있으므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 부족하고 허기짐을 느낀다면 초점이 육신에 맞춰져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에 만족이 없다면 못 깨달았다고 보면 됩니다.
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ich strengtheneth me.
나를 강하게 하시는(strengtheneth me)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Christ)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I can do all things) 했습니다.(13절)
이 내용은 보혜사를 보낸다는 예수의 말이 실현되었다는 뜻으로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육신을 떠났다는 말로서 욕심을 완전히 버렸다는 뜻이지요.
육신에 초점을 맞추면 부족함이 있지만 성령에 초점을 맞추면 이미 모든 것이 완벽아래 놓여있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알아야할 것이 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4:14)
Notwithstanding ye have well done, that ye did communicate with my affliction.
그렇기는 하지만(Notwithstanding) 너희가 나의 고통과 함께(with my affliction) 소통한 것은(did communicate) 잘하였다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다음가르침과 같다는 말씀을 드리며 빌립보서 4장의 두 번째 시간을 마칩니다.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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