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배가번드 2025. 10. 1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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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갈 때마다 듣게 되는 찬송가는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줍니다.

가사내용을 보면 모두가 영적인 길에서 얻게 된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으므로 감동을 받을수밖에 없습니다.

어떨 때는 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가사에 옮겨놓았으므로 눈물이 절로 납니다.

모든 찬송가가 그러하지만 이번 주일에 들었던 찬송가는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 모두에게 무척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으므로 상고해볼까 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일반적으로 성령을 깨닫는 것을 영접한다고 표현하며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려오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연구해보면 성령은 우리 안에 깊숙이 잠들어 있으며 그를 깨우는 것을 두고 영접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만 있고 하늘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신 성령은 삼라만상 속에 거하심으로 하늘에도 땅에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육신의 죄업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죄를 씻고 나면 밝히 드러나게 됨으로 중한 죄 짐 벗었다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1절)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바 있지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마6:22)

The light of the body is the eye: if therefore thine eye be single,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light.

 

눈을 하나로 만드는 것을(thine eye be single) 성하다고 번역했는데 이는 우리육신의 눈이 온전치 못하다는 점을 말해주며 사물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혜안이 열리면(두 눈을 하나로 만들면) 삼라만상 속에 빛이신 성령이 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되면 슬픔으로 가득 찬 이세상이 천국으로 보이게 됩니다.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말과 같으며 예수님의 다음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하나님 왕국이 우리 안에 임한다는 말은 육신을 성전으로 만든다는 말과 같은 것이며 이렇게 되었을 때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온통 불합리하게만 보이던 일들이 모두 그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하늘에 뜻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2절에서 멀리 뵈던 하늘나라가 내 맘속에 이루어졌다 한 겁니다.

이 가사내용역시 예수님의 다음말씀과 동일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저 멀리 하늘에 우리가 가야할 천국이 있다 생각했는데 성령을 깨닫고 보니(맘속에서 이뤄지니) 우리 안에 있음을(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알았고 살아갈수록 더욱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지금은 육신에 갇혀서 빛의 몸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삶이 끝나는 날 육신을 벗어던지고 빛의 몸으로 화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에 대해 확신을 하는 사람의 말로서 성령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의 얼굴을 뵈었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만큼 빛을 본다는 것이 중요하며 지혜안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빛을 경험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므로 영적 체험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3절에서 분별심이 없어져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해있는 상황에 관계없이 성령은 동일하게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Then answered Peter, and said unto Jesus, Lord,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if thou wilt, let us make here three tabernacles; one for thee, and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as.

 

지금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이 성자인 사람 안에 성령으로 임하시게 됨을 말하는 동시에 빛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동일하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빛이신 성령은 시공을 초월해있다는 점을 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예수로부터 1500년 전 인물이고 엘리야는 900년 전 인물입니다.

성령은 과거 현재 미래에 동시에 존재하는 영원속에 거한다는 사실을 알라는 뜻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겁니다.

그리고 초막으로 번역된 tabernacles는 이동식 교회라는 뜻입니다.

빛을 깨닫게 되면(성령을 영접하게 되면) 우리육신이 성전과 같아진다는 뜻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내주예수 모신 곳이 어디나 하늘나라와 같다 했는데 이는 성령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빛이신 성령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이세상은 지옥과 같으며 저세상의 천국에 목말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내재하신 성령이 드러날 수 있게 우리 자신의 영적(靈的)소양(素養)을 갖추어야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물질지향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 입에서는 찬양의 노래가 절로 나오게 되며 우리 죄가 사함 받았음을 확신하게 되며 예수와 동행하고 그 어디나 하늘나라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목표점을 영생에 두고 성령이 내재하심을 확신하라는 뜻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내 영혼이 은총 입어’라는 찬송가의 감상문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