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으므로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빛이신 성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를 깨어나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
해보면 알겠지만 하나님이신 성령이 내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안에서 내행동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았는데 감히 양심을 속이는 짓을 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깨어났다는 것은 온 우주가 바뀐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며 가치관이 바뀝니다.
그렇다면 과거 바울과 같은 사도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는지 오늘 또다시 배워보겠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1:9)
For this cause we also, since the day we heard it, do not cease to pray for you, and to desire that ye might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in all wisdom and spiritual understanding;
이러한 이유 때문에(For this cause) 우리 또한(we also) 그것을 들었던 날 이후로(since the day we heard it) 너희를 위한 기도를 그치지 않는다고(do not cease to pray for you) 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영적인 이해와(spiritual understanding) 모든 지혜안에서(in all wisdom)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채우기를 바란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은 이후로 형제들을 위한 기도를 멈출 수 없다는 말이며 바울 및 사도들의 목적은 형제들로 하여금 성령이 깨어나게 하는데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이 깨어나면 모든 것을 영적으로 보게 되며 지혜롭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된다는 말이지요.
즉, 바울과 사도들이 성령과 하나 되어 이렇게 살고 있다는 말이며 형제들도 이렇게 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
That ye might walk worthy of the Lord unto all pleasing, being fruitful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하나님께 걸맞게 행하여(walk worthy of the Lord) 모든 기쁨에 이르고(unto all pleasing) 모든 선한 일에(in every good work) 열매 맺게 하며(being fruitful) 하나님 아는 일을 확장하라했습니다.(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성령의 내재하심을 알았다면 성령이 깨어난 사람처럼 행동하고 범사에 기뻐하며 선행을 베풀어 인식의 확장을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한 이유는 이렇게 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본인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턱대로 성령의 내재하심을 알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행동이 따라야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
Strengthened with all might, according to his glorious power, unto all patience and longsuffering with joyfulness;
그의 영광의 권능에 따라(according to his glorious power) 모든 힘으로 강하게 하시고(Strengthened with all might) 기쁘게 참아냄으로(longsuffering with joyfulness) 모든 인내에 이르게 하라(unto all patience) 했습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성령이신 하나님을 우리 몸에 담고 있으므로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성령이 내재하고 있다고 해서 뻐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라는 말씀이지요.
아마도 어떤 이들은 권능에 따라 강하게 되었다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어야하며 사람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어야한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은 성령으로 만물 안에 거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통해서도 나타나야 하며 사물을 통해서도 역사하셔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높은 곳에만 계신다고 생각하면 자신만의 하나님이라고 봐야하며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앞서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일을 확장하라 했지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육신을 조복(調伏)시키는 것이며 본능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타인의 일을 관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성령을 드러내야하며 하나 되게 만들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2)
Giving thanks unto the Father, which hath made us meet to be partakers of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light: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고(Giving thanks unto the Father) 했으며 이것은 우리를 빛 안에서(in light) 성도들 유산의 분담자(partakers of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를 만나게 만든다고(us meet to be) 합니다.
유산의 분담자는 빛이신 성령을 가리키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이는 빛이신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시간관계상 번역의 문제를 말할 수는 없지만 한글성경을 읽어보면 이어지는 구절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다음구절과 완벽하게 연결이 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Who hath delivered us from the power of darkness, and hath translated us into the kingdom of his dear Son: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even the forgiveness of sins:
어둠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옮기시고(hath delivered us)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들어가게(into the kingdom of his dear Son) 바꾸어 놓았다고(hath translated) 했습니다.(13절)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만나게 하는 것은 어둠으로부터 빛의 세계로 탈바꿈하게 만드는것과 같다는 뜻이지요.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하나님 왕국에는 육신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빛의 몸으로만 갈 수 있으므로 이는 성령과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14절에서 그의 피를 통해(through his blood)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we have redemption) 죄를 용서받기까지 했다(even the forgiveness of sins) 한 겁니다.
즉, 예수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남을 알게 되었고 성령과 하나 되어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역시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골로새서 1장의 두 번째 강해를 마쳤으니 세 번째 시간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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