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파주에서의 일조차 끝이 나고 일본행도 좌절된 데다가 장사까지 남에게 넘겨버렸으니 완전한 백수가 되어있었어.
할 수 없이 정보지를 뒤적거려서 내가 할 만한 일을 찾아 나섰는데 마땅한 직업을 찾기가 아주 어렵더구나.
이미 나이가 적령기를 넘어서 있었고 원래 기술이라고는 없이 장사만 했던지라 무엇이든 마땅치를 않았지.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 가구점의 배달일 이었어.
아무리 정보지를 뒤적거려봐야 내 나이에 학벌도 기술도 없는 사람을 구한다는 곳은 없었고 그나마 조금 편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자가용 운전사직은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래저래 마땅한 곳이라고는 육체적인 노동일 밖에는 없더구나.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우리 식구들이 한 달에 써야 하는 돈이 많아서라기보다 그동안 사무실을 열기도 하고 장사를 하기도 해서 저질러 놓았던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발생한 빚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었어.
심은 만큼 거두어야 하는 수확물이 내 욕심만큼이나 컸던 거야.
아마도 이때쯤 녹즙 배달 일을 병행하게 된 것 같아.
한 가지 일로도 모자라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했고 참으로 힘든 매일이었는데 이 같은 일을 하게 된 이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어.
가정생활을 함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의 갈등과 고민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는데 몸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침범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
이 같은 내 생각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육신은 어마어마한 혹사를 당해야 했어.
가구점일 한 가지만 해도 벅찬 노릇인데 불구하고 새벽의 녹즙 배달 일까지 해야 했으니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고통은 덜었던 것 같아.
아침9시 출근을 하면 저녁 9시가 되서야 퇴근을 하였는데 집에 잠시 들렀다가 저녁을 먹고 밤11시까지 휴식을 한 후 녹즙 배달을 나가면 빨라야 새벽2시, 늦으면 3시가 넘어야 들어오는 일과였으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어.
원래 가구점 일이란 것이 오전에는 가게정리와 청소를 하고 있다가 오후부터는 배달을 나가야 했는데 가구의 특성상 정리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더구나.
너도 생각을 해보렴.
덩치가 그토록 큰 가구를 정리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말이야.
우선 이쪽에 있는 가구를 저쪽으로 옮길 경우 저쪽에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고 저쪽의 가구가 다른 곳으로 가야 이가구가 저쪽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말이지.
그런 이유로 가구하나를 움직이게 되면 전체 진열이 모두 바뀌어야 하고 가게 전체를 뒤집어야 한다 이 말이거든.
이일을 하면서 스승님이 말씀하신 법문이 절로 생각이 나더구나.
“동쪽 산을 옮기면 서쪽 산을 옮겨야 하고 또다시 서쪽 산이 옮겨가면 또 다른 곳의 위치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통을 써서 어떤 일을 행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스승님께서 제자들이 수행으로 생긴 신통력으로 물질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을 나무라기 위해 말씀하신 법문이었지만 그 순간 내게는 가슴깊이 각인되고 있었어.
누가 나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인과의 법칙을 가르칠 수 있겠니?
이래서 세상일이 법문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 모양이야.
보통 가구점의 경우 오전에 가게청소를 하고 그 전날 판매를 하느라 흐트러진 가구들을 정리하며 쉬다가 오후부터 정상적인 업무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내가 취직이 되었던 곳은 장사가 너무 잘되다 보니 가구의 이동이 많았고 거기에 따라 가구를 비치하는 진열장소도 3군데나 되었어.
게다가 가구점 사장님께서는 원래 세탁소를 경영하시던 분이라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잠시도 직원들이 쉴 틈을 주지 않는 거야.
출근을 하고 간단한 청소가 끝나면 쉬다가 오후부터 배달을 나가야 하는데 사장님께선 잠시도 쉬는 것을 허용치 않는 통에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직원들이 모두들 도망을 다녔겠니?
직원들은 숨고 사장님은 찾으러 다니는 일이 매일이었는데 너무나 혹사를 당하다 보니 직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사장님 흉을 보더구나.
며칠간 지켜보노라니 사장님의 성질이 누가 노는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거기에 따라 나도 대응방식을 달리 해야겠다 마음먹게 되었지.
출근과 동시 가게 앞 가구정리를 해놓고 위층의 정리가 끝나는 대로 지하에 위치한 곳으로 내려가 청소를 하기 시작했어.
사장님이 시키기 이전에 미리 가서 걸레질을 하고 가구를 닦는 등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더니 나를 보고는 웬만한 일은 시키지 않고 나머지 직원들을 찾으러 분주히 돌아다니곤 하더구나.
솔직히 나로서는 가구를 옮기는 일보다 차라리 청소를 하고 가구를 닦는 것이 훨씬 편했거든.
이러한 생각을 한데는 다분히 내 계산적인 두뇌가 큰 작용을 했음은 물론이야.
아들아!
나의 약삭빠른 잔머리를 나무라지 말아다오.
내가 하는 가구점일이라는 것이 매일같이 이사를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해보면 이 같은 내 말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여겨져.
이렇게 오전시간을 사장님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나면 오후부터 배달이 이어지는데 가끔씩 한 세트로 이루어진 가구를 배달할라치면 그야말로 초죽음이 되기 십상이었어.
운이 좋은 경우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배달 갈 때는 쉬웠지만 우리 가게가 있는 곳은 대부분이 연립주택형의 5층 이하 건물들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없었거든.
이러다 보니 좁은 계단으로 가구를 옮겨야 하는데 구부러진 계단을 이리저리 꺾어지며 올라가는 것이 그리 간단한문제가 아니었고 보통3짝이 한 세트로 이루어진 장롱들이라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이거야.
이런 일이 재수가 좋을 때는(?) 3번도 해야 했는데 사장님의 재수 좋음이 우리에게는 억세게 재수 옴 붙은 날이 되고 있었어.
사장님의 천국 같은 하루가 우리에겐 지옥 같은 하루가 되었으니 이보다 천국과 지옥을 잘 설명할 수는 없지 않겠니?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도 변함없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가 하는 식사방법 이었어.
다른 분들의 경우는 저녁식사까지 가게에서 제공을 받고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생식가루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었거든.
물론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만큼의 식대는 사장님께서 지급을 해주셨지만 내가 경험해본 결과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은 생식이 장기적으로 선택할 식사방법은 아닐 것 같아서 또다시 되짚어 보는 거야.
정신적인 일을 하시는 분들은 이와 같은 식사방법을 선택해도 별무리가 없겠지만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분들은 아무래도 배를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식사법이 맞는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더구나.
누군가 이 같은 내 말에 반발을 할 분들도 있겠지만 그분 역시도 장기적으로 육체적인 노동을 할 경우는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
의식이 고도로 집중되면 모든 에너지체제가 바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같은 것도 육신이 정신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때 말이지 육체를 끓임 없이 사용해야 하는 노동일의 경우에 적용되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렇지만 미군 막사일 부터 시작해서 이일을 하는 동안 점심시간만큼은 생식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식사를 하는 나를 보고 함께 일을 하시는 분들은 별종을 보듯이 하였으며 사장님께서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끼시는 것 같더구나.
하긴 나 스스로도 자신이 무서울 정도였으니 남들이 봤을 때는 독종이라 여겼을법해.
게다가 몇 달이지나 일과 후 또다시 녹즙을 배달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는 다들 나보고 철인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새까맣게 타는 내 속을 어찌 알 수 있었겠니?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녹즙배달을 나갈 시에는 늘어진 내 몸을 억지로 추슬러야 했는데 이 시간이야말로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보니 그 즐거움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가벼이 여기고 있었어.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힐 정도로 미련했던 나의 과거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솔직히 내 정신적인 고통에 비해서 그와 같은 육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지.
이상속의 성인의 품성을 닮기 위해 현실의 육신과 두뇌를 단련시키는 번뇌 속을 헤매던 어느 날 또다시 내 마음을 시험 받는 일이 발생하였어.
연일 계속되어지는 일과에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있던 어느 날 아침, 녹즙대리점 소장님께서 전화가 왔는데 마지막 배달처의 녹즙 통을 어디에 두었나 하시기에 평소처럼 놓아두었다고 말씀 드렸지.
그런데 잠시 후 또다시 전화를 하시더니 누군가 통을 훔쳐 간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다른 장소에다 통을 놓으라는 것이었어.
“세상에 녹즙을 훔치는 인간들도 다 있구나?” 하고서 전화를 끊고 출근을 했고 그날 일을 평상시와 다름없이 마친 후 또다시 배달시간이 되어 녹즙대리점에 가서 그날 배달할 통들을 실기위해 봉고차의 중간 문을 열었을 때였지.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배달통이 차 안 뒷좌석 바닥에 버젓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니?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만 것이었어.
이불 장사를 하기위해 구입했던 차가 할부금만 들어가고 놀고 있기에 시작한 녹즙배달 이었고 차와 내가 함께 배달업에 종사를 하게 되었으니 배달이 없는 낮 시간은 골목길에 주차를 시켜놓는지라 미처 살필 틈이 없었거든.
마지막 한집을 남기고 대리점을 향하고 있을 때 마지막 배달 처를 지나쳤던 것을 몰랐던 거야
내가 이와 같이 배달사고를 낸 줄 몰랐던 것은 박스를 배달하게 되면 6인승 봉고차인 내차 뒷좌석이 행여 물에 젖기라도 할까 싶어 시트 위에다가 박스를 펴둔 것이 실수의 원인이 되었는데 차가 섰다 가다를 계속하다 보니 박스가 앞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바닥에 놓여 있던 마지막 배달통을 덮어버린 것이었어.
너무나 피곤하고 정신이 온통 화두를 붙들고 있는지라 긴가민가했고 나도 모르게 신호등 앞에 대기를 할 때 문득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니 통이 보이질 않기에 다 내린 것으로 알았던 거지.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 망연자실해 있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오더구나.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이미 소장님도 도둑맞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통을 없애버리면 누가 알 것인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없던 것으로 해버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지당한 말인 것 같았고 그래야 서로가 편해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같은 일로 인해 내가 먼 훗날 어떤 일을 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이 같은 생각을 눌러버리기로 하고 내 머리 속의 여러 가지 생각들 중 한 가지를 선택하였어.
내 머리 속에 담겨진 내 선택에 따른 결과물은 대리점 칠판에 옮겨지고 있었지.
“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너무나 피곤하다 보니 뒷좌석을 제대로 살피질 못했어요.
지금에야 통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피해드린 것은 월급에서 다달이 제하기로 하시고 부디 용서하십시오.
앞으로는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들아!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낮 뜨거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야.
사람은 언제나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서라도 이 같은 말을 해야만 하는 나를 이해해다오.
내가 쓴 이 글을 보고나신 소장님이 아침에 나오셔서 다시 칠판에 답변을 쓰신 것이 나의 이 같은 “인”에 대한 “과”를 보여주고 있었어.
“솔직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도 있는 문제를 밝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를 내셨군요. 실망하시지 마시고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이지요.
앞으로 다시 반복하시지 않으면 됩니다.”
아!
아들아!
내가 내 속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타협하지 않았던 것을 얼마나 다행하게 생각했는지 몰라.
물론 반대의 경우도 내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음은 물론이야.
결과가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내가 다행으로 여긴다면 반대의 경우는 다행이 아닌 것으로 되겠지만 내가 항시 강조하듯이 언제나 다행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을 네가 생각 할 수 있길 바라는 뜻에서 이렇게 열심히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해.
이와 같은 인과의 법칙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일이 얼마 후 연출이 되고 있었어.
이때는 보다 더 녹즙배달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처럼 숙달이 되어있을 무렵이었지.
대리점에서 나와 대여섯 군데를 지난 지점이었는데 도로가에 차를 세워두고 녹즙이 든 통과 빈 통을 교체 하려는 순간 “쨍그랑”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지 않겠니.
뭔가 싶어 내차를 보는 순간 웬 남자가 내차의 백미러를 주먹으로 깨트리고 가는 거야.
후다닥 뛰어가서 그 남자의 멱살을 잡았지.
“야! 임마!
왜 남의 백미러를 깨고 난리야!
엉!
빨리 물어내!
빨리 돈 내놔!”
상대가 변명할 틈도 없이 내입에서는 속사포 같은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어.
술에 취한 탓도 있었지만 범행(?)현장에서 잡힌 죄인인지라 대꾸도 못한 체 내게 멱살을 잡히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깨진 유리를 난리를 피울 것이 아니라 달래서 보상이라도 받아야한다 생각했지.
그런데 이와 같은 내 생각은 어디까지나 헤피 엔딩을 바라는 내 두뇌의 작용일 뿐 현실은 그렇지를 않더구나.
돈 한 푼 없는 지갑을 보여주는 젊은 친구의 손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이 노릇을 어떻게 하나 했는데 일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이 있었어.
때는 79년의 추운 겨울날 10.26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전국이 계엄령에 휩싸여 있을 무렵이었지.
매일과 같이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전거에 도시락을 높이 매달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던 거야.
10시면 통행금지가 되는지라 가게 일을 마치기 바쁘게 술집으로 달려가 처음 사귄 사회친구와 급하게 들이붓다시피 마신 술이 집이 다가오자 취기가 오르고 있었는데 자전거가 커브 길을 지나는 순간 길에 세워둔 차가 튀어 오르는 것 같더니 내 눈이 심하게 번쩍이기에 또 내가 넘어졌구나? 했지 않겠니.
이미 자주 경험했던 터라 더 이상 전봇대가 넘어진다느니 아스팔트가 일어나서 때린다느니 하진 않았지만 무엇인가 깨어진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어.
통행금지에 급하게 쫓기던 터라 주위를 살필 틈도 없이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왔는데 다음날 그 자리로 가서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내가 부딪힌 차를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 사건은 영원한 미결로 내 두뇌 속 한자리에 깊숙이 가라앉아 버렸지.
그런데 20년도 훨씬 더 지난 그날에 또다시 그 일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거야.
경찰서라도 끌고 갈려던 내 손에 힘이 풀리고 있었어.
“앞으로 술을 먹더라도 남의 차를 부수지는 마라.
응!”
이렇게 말하고는 돌려보낼 수밖에 없더구나.
아들아!
지금까지 그렇게나 너와의 대화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렇게 현실 속에서 내 지나온 과거속의 행위에 대한 결과물들이 나타나고 있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거야.
사람들은 너무나 명확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들이 돌아오는 것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인정을 하지는 않거든.
모두가 그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그들을 이 세상에 묶어두기 위한 일이란 것을 자신들이 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러한 연극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
내가 수없이 강조한다 해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역시 내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 네가 내 말에 동조를 할 수 있게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너도 나를 닮아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꾸나.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가끔씩 그 음악에 따라 추억이 떠오르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거야.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여겨져.
누군가와 만나서 어떤 일이 발생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음악을 들을 때 추억이 떠오르는 것 과 같은 이치다 이 말이거든.
다시 말해 네가 누구와 전생에 어떤 일을 한 적이 있다고 가정을 했을 때, 이생에서 그때와 비슷한 상황의 일을 하게 되면 그 같은 일을 무의식중에 떠올리게 되고 거기에 따른 연극을 하게 된다 이 말이지.
그와 같이 일어나는 일에 따라 네가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기도하고 득을 보게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 말이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고 지난번에 몇 번에 걸쳐 말했지?
이런 내 말이 도저히 인정되지 않는 것이 네가 이 세상을 더욱 리얼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인만큼 내말을 믿지 않는다 해도 문제될 것은 전혀 없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 같은 연극이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사람들을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거든.
아들아!
거듭 말하지만 이 세상에는 즐길게 너무나 많아.
이렇게 즐기는 것을 내가 나무란다고는 생각지 말아다오.
솔직히 말해서 이와 같이 즐기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거나 또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내가 선택했다고 해서 이 세상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어.
왜 이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는 분들에게 저 모양 저 꼴의 세상이 있음을 말해주고 이 모양의 세상을 저 모양으로도 볼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뿐이야.
내가 녹즙배달 중에 있었던 조그마한 일상을 너무나 심각하게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일어난 조그마한 인식의 균열이었다 해도 좋을 일을 겪고도 변함없는 나의 일상은 계속되어 졌는데 배달을 하다가 가끔씩은 의식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뿌리쳐야 했는지 몰라.
만약 내가 의식을 놓아버림으로써 영원히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놓아버리고 싶었어.
내가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왜 이같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기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가 싶었는데 이 같은 생각을 할 때면 생각을 따라 올라오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이라는 등불이었지.
내가 말하는 희망은 절대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어.
어디까지나 내가 겪어나가는 이 같은 고통스럽고 번뇌 가득한 삶이 내게 깨달음을 주리라는 희망이었지.
그 같은 내 생각을 확인시켜주듯이 내 귀에 늘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백회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에너지가 내 머리 속에서 전류를 일으키는 것을 느끼면서 황홀함에 몸을 떨어야 했거든.
하지만 아들아!
이렇게 행복한 순간도 긍정적인 생각에 머무는 순간에 해당하는 말일뿐이었음을 고백해야겠구나.
무거운 가구를 들고 오층을 오르내릴 때면 결코 행복하지 않았어.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내 삶을 생각할 때는 차라리 내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 공중에 흩어져버렸으면 했거든.
이렇듯 내 삶이 긍정과 부정을 오르내리며 지옥과 천국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찾는 이가 있었지 않겠니.
항시 내 생활 속에는 어째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는데 그때 역시 어째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야.
언제나처럼 매장의 이곳저곳을 걸레를 들고 다니던 중이었어.
길 건너편에 위치한 제2지하 진열장을 들어가서 열심히 걸레질을 하다 보니 손님 한분이 들어오시더구나.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시고 계셔서 누군가 몰라보았는데 매장을 둘러보느라 고개를 들어올리기에 보니 우리명상단체의 사저님이었는데 이분이 다녀가신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동수 한 분이 온 거야.
아마도 앞의 사저 분에게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듯했어.
누구도 모르게 지내고 싶었는데 세상에는 비밀이라고는 없는가 보았지.
이 사형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함께 일을 하자는 거였는데 이분이 그 당시 녹음기를 판매하고 있었거든.
지금이야 워낙 성능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때당시만 해도 그러한 제품이 드물 때라 사형이 팔고 있는 녹음기가 아주 인기가 좋았어.
한번에 10시간이상씩 녹음이 되는 것이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용하였고 수사관들도 많이 구입을 하였으며 특히나 흥신소(심부름센터)분 들이 많이 애용하는 것 같더구나.
물론 거기에 따른 마진이 좋았음은 물론이고…
그런데 내가 이사형의 제안에 솔깃했던 것은 결코 보수가 많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가 아니었어.
가구점 일이 너무나 힘이 드는데 불구하고 다른 일거리가 마땅치가 않아서 어떡하나 할 때였거든.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서 감나무에 감이 떨어진 격이었다 이거야.
아들아!
이것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가 어떤 마음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니?
만약 내가 그 사형이 찾아온 것을 그러려니 여긴다면 별의미가 없게 되겠지만 기가 막힌 신의 안배로 여긴다면 그야말로 앞뒤가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게 된다는 거지.
이래서 내가 매 순간이 신의 축복으로 가득하다고 했으며 기적 아닌 순간은 단 한순간 도 없다고 했던 거야.
어쩌면 이러한 점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핵심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네게 이해시키기에는 내 능력이 한계를 느끼는구나.
쉽게 말하자면 매 순간 최고의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 때 네가 진정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할 수 있다 이 말이거든.
그때가 되면 그야말로 책에서 보아왔던 말이 가슴에 와 닿을 거라 생각해.
아!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내 삶이 기적이 아닌 순간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이세상의 평가기준을 벗어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매 순간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냐 말이야.
아무래도 이것은 나 혼자만이 간직하는 나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었다가 너와의 대화의 막바지에서 다시 한 번 말해야 할 것 같구나.
내가 3자의 시각이 되어서 남을 평가할 때는 얼마든지 인정해 줄 수 있고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막상 내가 당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말하며 이곳에서 여장을 풀어놓고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