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도대체 내가 하고 있다는 명상을 하게 되면 어떤 체험들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
내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치중하다 보니 수행상의 체험들을 등한시한 것 같기도 하고 네가 많은 궁금한 점들이 있음에도 내가 지나치지나 않았나 생각되기도 하는지라 이번 시간은 그 같은 궁금한 점을 아주 심도 있게 리얼하고 드라마틱하게 파헤쳐 보도록 하자꾸나.
모르긴 해도 네가 영혼이라는 것조차도 제대로 인식이 안 되고 있으리라 여겨져.
맞지?
어떻게 알았냐고?
네가 그 같은 사실을 명확하게 알았다면 더 이상 알 것이 없어지는데 네가 안다는 것이 되레 이상한 것이지 모르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야.
나는 알았냐고?
아들아!
여기 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네 속으로 내가 어떠한가를 묻고 싶었고 더러는 묻기도 하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물음은 하지말길 바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나의 문제이고 내가 깨달았건 못 깨달았건 나의 문제일 뿐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앞으로도 내가 말하는 것을 네가 사실이다 싶으면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면 되는 것이지 이렇고 저렇고 따져봐야 서로간의 시간낭비에 불과한거야.
앞의 시간에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우리 몸에는 최소한 일곱 개의 차크라가 있다 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많아.
요가나 수행단체에서는 알기 쉽고 보다 편리하게 구분을 그렇게 했을 뿐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도 수없이 많다고도 볼 수 있어.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머리 부분만 하더라도 이마 한복판과 미간사이에도 있고 정수리 부근에도 차크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은 전문적으로 수행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몰라.
누군가 강하게 이 같은 내 말에 반대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다 아는 것은 아니라 보면 정확해.
수행방법에 따라 수없이 많게도 혹은 아주 작게도 구분할 수 있는 거지 반드시 이렇다는 것은 없는 법이야.
예를 들어 보자면 상단전하면 지혜안을 말하고 중단전하면 명치를 이름이고 하단전하면 단전을 말하기도 하거든.
그렇지만 우리단체의 수행법이 최상법문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지혜안 한곳에다 집중을 한다 이 말씀이지.
이곳에만 집중을 해서 수행을 해도 모든 곳이 뚫려 버릴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강력한 만큼 위험도 역시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지난번 말했을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수행법이나 다른 수행자들의 체험들을 놓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이 이러한 체험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점부터도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어.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확인하지 못하면 무조건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정신 이상자 쯤으로 몰아 부치기 일쑤이기 때문에 가끔씩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만들기도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아주 작정을 하고 그 같은 불신들을 없애보자 이거야.
너도 아마 영화를 보거나 해서 알고 있겠지만 모든 무도인 들이 기를 모으는 곳이 바로 단전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곳을 하단전이라 말하고 있어.
이곳을 단련시킨 사람이 누구와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가끔 사람을 죽이게 되기도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내공의 기가 실려서 일어나는 일이지.
손바닥으로 치기만 해도 장 파열이 일어나거나 탁자를 살짝 내리쳐도 부서지는 등의 일이 일어나게 돼.
그런데 이 같은 수련을 해서 생긴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게 되면 이상한 쪽으로 발달이 될 수도 있는데 그 같은 일을 주화입마가 된다고 하는 거야.
많이 들어보았지?
무협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잘못 된다기보다 잘못하면 빙의가 되거나 단전을 잘못 건드려서 색마가 될 수도 있어.
가끔씩 여자를 너무 밝히거나 반대로 남자를 너무 밝히는 경우 역시 이러한 하단전이 지나치게 발달이 되었다고 보면 될 거야.
그래서 대부분의 수행인들이 이와 같이 하단전에 모은 기를 그곳을 여는데 쓰지 않고 다시 회음 부를 통해 척추로 끌어올려서 명문을 지나고 경추로 끌어올려 정수리를 지나 돌린 기를 다시 앞면의 중단전으로 돌려서 하단전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일 주천 시킨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정도만 해도 어떤 신통들이 생길 수 있거든.
이다음으로 영안을 열거나 천안, 불안 등을 수행력에 따라 열게 되는데 그러한 것이 말과 같이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라는 말이지.
어떤 분들은 쉽게 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평생이 걸려도 어렵게 되는데 이 같은 것만 봐도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전생에 많이 수행을 한 사람의 경우는 조금만 수행을 해도 바로 감응이 와버리거든.
지난번 시간에도 잠시언급을 했듯이 중국에서 생겨난 파룬궁(법륜궁) 의 경우역시 우리나라에서 행하고 있는 것과 약간 변형된 단전호흡법 이라 보면 되는데 이러한 모든 단전호흡법들이 수련이 깊어질수록 마지막에는 상단전으로 올라가게 되며 마지막 코스에서 모두들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거야.
왜냐고?
그것이 바로 그분들의 신구의가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
앞에서도 많이 강조했듯이 말과 행동과 뜻이 올바르지 않다면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이거지.
그래서 수행한다는 사람들은 극도로 정신이 맑아야 하며 그 수행의 도가 높을수록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고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
지금 우리나라에 유명한 단전호흡단체나 또는 타 수련단체에서 수행하시는 많은 분들이 내 말과 같은 지경에 빠져서 곤란을 당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은데 그들이 내 말을 뒷받침하고 있으니 달리 확인할 필요도 없어.
물론 본인이 수행에 욕심을 내지 않고 심신을 단련 하는데 만족을 하게 되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확철대오를 하겠다든지 부처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 같은 방법을 권하고 싶지는 않아.
만약 호흡법만으로 부처를 이룰 수 있다면 불교에서 하는 좌선법이 필요 없어지겠지만 부처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승불교의 방식이 보다 정통적이라 할 수 있어.
하지만 불교에서도 공부방식이 아주 다양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어떤 선방은 20년간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서 오로지 정진만 한다고 하니 과히 깨달음을 위한 몸부림들이 어떠한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는 거지.
하지만 이 같은 방법도 티베트 불교를 본떠서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이야.
원래 이 같은 방법을 정하는 것이 개인이 원해서라기보다 티베트의 라마교에서 스승이 제자들의 자질을 보아서 그러한 방법을 명하게 되는 것이지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거든.
누구나가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일이 발생이 되어서 정신이 돌아버리거나 주화입마가 될 소지가 너무나 많아.
우리단체 역시 스승님의 지시를 어기고 관음과 관광의 비율을 함부로 어겼다가 주화입마가 되어 모든 동수들이 힘들게 제정신으로 돌린 예도 있어.
스승이 제자를 데리고 함께 일정기간을 지내보고 그제자의 공부 방식을 정해주는 것인 만큼 스승의 자질이 극히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지.
그래서 과거 우리나라의 역대 큰스님들도 일단 불교에 들어와서는 자신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을 찾아 전국을 헤맸던 거야.
이렇게 평생을 헤매 다녀도 빛과 소리하나를 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말이거든.
솔직히 내 개인의 경우는 내가 속해져 있는 우리단체의 방법이 가장 빠르고 최고의 방법이라 여기고 권하고 싶긴 하지만 이방법도 일반인들이 따라 하기는 무리가 많아.
철저한 금욕수련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어서 우리단체만 하더라도 92년부터 오늘날까지 입문하신 분이 5만 명(방편자 포함)은 족히 넘을 것 같지만 생존자는 1천명이 체 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말이야.
그런데 이같이 어려운 대신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데 오늘 이러한 체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해.
우선 이러한 체험들은 보다 정통적이다 할 수 있는 불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고사에 나오거나 설화 속에 나오는 스님들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방에다 가두어두고 방문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뚫어놓고 그리로 소가 들어오거든 나오라고 하는 대목들을 볼 수가 있어.
나 역시 이러한 구절을 읽으면서 그저 그렇겠거니 했지만 막상 수행이란 것을 해보니 몸소 경험을 하게 되더라 이거지.
그 같은 소리를 다른 단체에서는 “옴” 소리라고도 하는데 이 같은 소리를 듣기에 따라 소 울음처럼 들릴 수도 있거든.
“오~옴” 하기도 하고” “음~ 메~” 하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도 있으니 모두 같은 소리라 보면 되리라 생각해.
이와 달리 해조음을 듣기도 하는데 이 같은 소리는 마치 파도소리와 같이 “쏴 아~” 하고 들리기도 한다 이거야.
또는 범종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콰~앙~, 콰~앙~” 하고 커다란 종을 올리는듯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 말이거든.
또는 까비르가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시로서 노래한 것처럼 수천마리의 말이 일시에 내달리는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만개의 작은북을 울리는 것 같은 소리로도 들린다는 말이지.
또는 음악소리로도 표현이 될 수 있는데 누구는 바이올린소리가 들린다고도 하고 피아노소리를 듣는다고도 하지만 이 같은 소리는 사실은 천상의 소리라고는 볼 수 없어.
왜냐하면 천상의 소리를 본떠서 우리 이세상의 악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세상 악기와 같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두뇌가 만들어낸 소리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보다 더 높은 천상의 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소리가 24시간 듣게 되었을 때라야 진정으로 천상의 소리와 연결이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거든.
기독교에서는 이 같은 소리를 우리들이 죽어서 천국에 이를 때 천상의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이 영접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와 같은 경험을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 경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는 없더구나.
이 같은 이유가 단지 성경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 같은 말이 매일같이 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의 귀에는 어떻게 들릴지 네 상상에 맡기마.
이와 같이 소리로 체험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빛으로도 체험할 수 있는데 한꺼번에 눈이 멀 정도의 강력한 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거든.
이러한 체험은 기독교인들도 심심찮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아들아!
수십일 을 단식기도 한 끝에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하는 말을 들어보았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보고 말하는 거야.
이렇게 빛을 한번만 보고서도 입에 거품을 물고 하나님을 위한 봉사를 한답시고 목숨을 걸기라도 할 태세인데 매일 보는 경우는 어떠할지 이 또한 너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마.
이와 같이 빛을 보는 것을 불교의 태고종에서는 자신의 코끝을 응시하는 관법을 가르치는데 이 같은 이유가 갑자기 빛을 보게 될 경우 눈이 멀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 이라는 거지.
이 빛만 해도 종류가 아주 많은데 색색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높낮이가 있음도 물론이야.
어떤 이는 황금빛이 가장 높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독하게 밝게 되면 모든 것이 흰빛이 됨으로 가장 높은 빛은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백광이라 할 수 있어.
이렇듯이 빛과 소리뿐 아니라 어떤 경계를 가기도 하는데 지난번에 말을 했듯이 아마타세계니 서방정토니 하는 곳이나 도솔천 등의 세계를 가기도 하거든.
이런 데를 경험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을 어디까지나 이야기책에나 나오는 말인 줄 알겠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니야.
이 같은 이야기가 사실인 것은 이러한 곳을 갔다 온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인데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똑같이 묘사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사실이란 것을 알아야 해.
만약 두뇌가 만들어낸 것 같으면 이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말이 틀리겠지만 아미타세계와 같은 불국토를 경험한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경치를 말하고 있어.
내가 앞서 내 삶의 여정 중간 중간 말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새삼 설명을 하진 않겠지만 이 같은 말들이 너무나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의 영혼이 갈 길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거든.
흔히 사람들은 죽으면 단순하게 모두들 같은 곳으로 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죽게 되면 끝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고 살지만 결코 끝이 아니란 것을 내 삶의 여정이 충분히 보여주었으리라 생각해.
내가 수없이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이 이 세상에 심어 놓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고 그러한 빚들을 모두청산을 해야만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네게 말하고자 했던 거지.
물론 이 같은 생각 역시 하나의 제한된 시각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이제는 좀 더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가서 이 육신을 벗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평소 살아생전에 자신의 인식정도가 미래 생을 결정한다고 앞에서 말한 것이 옳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우선은 내가 평상시 어떤 인식상태에 있었나 봐야할 거야.
그러나 죽음을 맞이한 상태에서는 평상시 내가 쌓아놓은 지식은 별로소용이 없어.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지식은 모두가 도망을 갈 가능성이 너무나 높거든.
왜냐고?
그것은 우리가 육신을 가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야.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불교경전에 나와 있는데 부처님이 설법당시에 무엇이 모여드는가를 보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법을 듣는 자가 사부대중을 비롯하여 건달바나 야차들 혹은 무형의 수많은 중생들이 온다고 하는 것만 봐도 죽게 되면 내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이 말이지.
이러한 것들이 내가 빛과 소리를 득한 상태면 머리를 조아리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상황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야.
“티베트의 사자의 서”라는 책에서 명확하게 죽음의 세계를 묘사해 놓은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이 말이거든.
지난번에 내가 말했지?
지옥의 야차에게 발목이 잡혀서 거꾸로 매달렸던 일…
그와 같이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되어서 평상시에 생각하고 있던 일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게 되더라 이거야.
이렇게 무시무시한 경계에서도 자유롭게 되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뗏목임은 물론이고…
아들아!
내 말이 너무나 부정적인 것 같지?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경우 말고 좀 더 좋은 경우를 보도록 해.
본인이 이 세상을 살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천국을 가게 된다면 그곳에 가서 또다시 공부를 하게 되거나 일정기간을 지내다가 자신의 선업이 다하게 되면 이 세상을 또다시 오게 되는데 이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우리는 윤회라 불러.
이 같은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은 물론이고 그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구입하고자 하는 표가 바로 이러한 천국행 표가 아니겠어?
이것 또한 절대 허구가 아니야.
다만 그러한 천국에 가기 위한 방법이 틀릴 뿐이지.
돈을 주고 사고팔고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은 성경에도 나와 있어.
“너의 재산을 아버지 하나님 왕국에 쌓으라.”
이 말은 돈을 교회에다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선업을 지어 왕국에 갈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만들라는 말이고 수행을 통해서 보다 높은 곳에 이르길 가르치는 말임을 알아야 해.
“먼저 아버지의 왕국을 찾으라.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네게 임하리라”
바로 이 말이 빛과 소리를 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아들아!
이것은 노파심에서 하는 소리이긴 한데 네가 내 말을 오해를 할지도 몰라 하는 소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들어주렴.
내가 자꾸 빛과 소리를 강조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해.
언젠가 네게 말을 했듯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같은 것들이 진동수를 달리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빛과 소리라고 했고 빛과 소리 중에도 주파수가 더욱 빠른 것이 소리라 했지?
바로 이것이 내가 그토록 빛과 소리를 강조하는 이유야.
사람이 죽게 되면 육신의 몸을 버리고 에너지 형태가 되어 자신의 주파수를 찾게 되는데 여기에 엄청난 우주의 비밀이 들어있는 거지.
내가 만약 수행이 높아서 내 영혼의 주파수가 높아졌다고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니?
당연히 높은 소리나 높은 빛을 보게 되겠지?
바로 그것이 내가 가게 될 세계라는 거야.
어때?
이제는 이해가 되었지?
만약 더 이상 이해가 안 되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말했던 만큼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어.
자!
이제는 사후세계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보는데 보통 사람들이 죽게 되면 모두가 같지 않게 된다는 내 말이 어쩌면 네가 이해를 못하고 있을 거라 여겨져.
왜 지난번에는 모든 이들이 영혼이 같다고 하고선 이제 와서 딴소린가 했을 거야.
거기에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고 내가 이미 해답을 말해주기도 했어.
하지만 네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리라 여겨지기도 하니 또다시 설명해보기로 해.
모든 이들의 영혼이 같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근원의 영혼을 말하였던 것인데 이 같은 영혼을 우리는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품안에 들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만 우리 인간들의 분별 심을 충족시켜 주기위해서 우선 핵심적인 두뇌를 예로 들어 보자꾸나.
사람 몸에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부위가 있듯이 영혼의 세계에도 그러한 곳이 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리라 여겨져.
우리가 이 세상을 처음 오게 되었을 무렵의 출발점은 같다 해도 각자의 길을 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쌓아 놓은 것들이 겹겹이 둘러쌓아 놓았을 것이 아니겠니?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같이 쌓여진 것들을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것이 수행이라고 보면 정확할거야.
누군가 죽게 되어서 영혼이 빠져나갈 때 자신이 평상시 수행을 해서 닦아놓은 것이 많다면 거기에 따른 주파수의 세상을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자신이 평상시 생각하고 인식한 세계로 가게 된다 이 말이거든.
이것은 너무나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불평불만을 주지 않는데 가끔 사람들은 이 같은 내 말에 항의를 하듯이 따지기도 해.
“왜 다른 이들이 가는 곳을 나는 못 가냐?”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곤 하지.
내가 못 간다고 하거나 하나님이 못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러한 길을 선택하지 않을 뿐이라고…….
당신영혼의 가장 핵심부분이 아직까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아직까지 여행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 말을 해주지만 이러한 내 말도 그들이 이해를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야.
이렇게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벗겨내는 것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네 영혼이 이 세상을 살면서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는 여행을 해야만 한다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세상의 어떠한 유희도 하찮게 여기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거든.
세상유희에 빠지는 것을 수행자들은 마구니 에 잡혔다고 하고 물질적인데 초점을 맞추어서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수행자들을 사회생활에서의 낙오자들로 보는 이유가 되는 거야.
나 같은 경우는 철저하게 양쪽을 경험하는 선택을 했기에 양쪽 진영의 마음들을 조금씩은 알아.
아들아!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명확하고 공평한 일이기에 일찍이 예수님도 말씀하셨어.
“심은 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모든 이들에게 만족을 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네가 시험을 치기위해서 책을 읽었는데 열 가지를 외우면 열 가지의 정답을 쓸 것이고 다섯 가지를 외우면 다섯 가지의 정답을 쓰게 되는 이치인거야.
이 시험은 이세상의 시험과는 달라서 커닝이 허용 되지 않아.
오로지 모든 일은 자신의 결정에 달렸을 뿐이지.
지금까지 너와 나의 대화는 일반인들을 위한 말이었을 뿐 수행자들에게는 이보다 더욱 많은 세계들이 기다리고 있어.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까지도 이렇게나 힘이 드는데 수행의 길에는 어떠한 어려움이 놓여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니?
수행의 길에 놓인 어려움 중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지만 사람들이 수행을 하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유체이탈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만 경험해도 사람들이 경이로움에 도취되어서 황홀하다고 여기거든.
어떤 이는 이것이 최고의 경지인줄 알고 있기도 하는데 그 같은 일이 그분을 만족케 한다면 그것도 안 될 것은 없겠지만 그보다 더욱 많은 세계가 있음을 몰라서 하는 소리에 불과해.
유체이탈은 사람이 죽게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가게 되는 것이지 그분만 가는 것은 아니거든.
하지만 보다 높은 세계는 자신이 그 세계와 같은 주파수를 얻지 않고서는 도저히 갈수가 없어.
전에 한번 얘기했듯이 높은 세계가 그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그 주파수를 견디기가 어렵다 이거지.
너와의 대화에서도 말한 적이 있었지만 내 속에서 나에게 말을 해주는 존재가 있었음을 말한 적이 있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몸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한 꺼풀 안의 존재일 뿐 그보다 더욱 높은 존재의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거든.
그때 내가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은 명상을 시작하지 않았을 무렵 들었던 소리였고 수행을 시작하면서 정도를 달리한 빛과 소리들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어.
사람 몸에 일곱차크라가 있듯이 일곱층의 몸들이 있는데 수행이 높아질 때마다 그러한 몸들이 깨어나고 그 몸들이 깨어남에 따른 증상들이 따라오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야.
아들아!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결코 너를 협박하여서 수행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다오.
이 같은 일들은 직접 체험을 해봐야지 이해가 되는 것이지 말만 듣고 책만 읽어서는 이해가 되는 것이 아냐.
앞에서도 말했지만 윤회가 나쁘다거나 수행하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고 다만 네가 가고자 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점이 있다면 거기에 따른 일들이 이러한 것들이 있게 된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거든.
네가 어떤 곳에 관심을 쏟고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네 앞길이 달라진다는 것을 너 역시도 경험해 보지 않았니.
네 주변을 보면 이 같은 내 말이 사실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운동을 하게 되니까 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운동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고 네 관심사 역시도 누가 싸움을 잘하는가에 신경을 쓰게 되었지.
그러다가 지금 있는 학교로 가서는 오로지 공부만 하게 되니 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가 그러한 친구들이 모여들고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었지?
물론 너는 나의 이 같은 말에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싶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던데 그것은 어쩐 일인가?”
하지만 아들아!
그것 또한 네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네 두뇌를 넘어서는 네 일곱 바디중 하나의 목소리인 것이고 그것이 네가 선택한 네가 가야 할 길이야.
그것을 내가 영혼의 선택이라 말했던 것이고…
아들아!
앞으로도 이어질 나의 여정 속에 또다시 이러한 영혼의 일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