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우리는 유의무의(有義無義)한 존재.

배가번드 2022. 4. 9. 06:23
728x90

약속이란 깨지라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듣습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왜 깨지라고 있는가 싶겠지요.

그렇지만 약속이 지키기 위해서만 있다면 약속이라는 단어자체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약속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거라는 말입니다.

때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할 경우가 왕왕 발생하게 됩니다.

이럴 때 사람사이에 다툼이 발생하고 크게는 소송까지 하게 되는 거지요.

알고 보면 사람사이에서만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약속도 많이 합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신께 무엇인가를 하겠다든지 혹은 목숨을 바치겠다는 약속도 스스럼없이 하며 지키지 않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이런 약속을 한두 번씩 안 해본 사람이 드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는지라 다들 무관심하거나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러면 과연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해 잊어버려도 될는지 각자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각자가 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 묻는다면 한가지로 답해 줄 수 있지요.

수없는 거짓맹세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지키지 못한 약속도 거짓맹세도 한순간에 도말됩니다.

그렇다면 자살이라도 하라는 건가 하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육신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십자가 부활의 의미를 깨달으라는 말이지요.

지금껏 살아나오는 동안 육신으로 저질렀던 모든 죄를 십자가형에 처해 단죄함으로서 영적인 부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살아도 죽어도 내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내안에서 하나님이신 성령이 되살아나게 만들어야지요.

이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실천하면 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유의무의(有義無義)의 실천이 바로 이런 상태를 이르는 겁니다.

내 뜻과는 별개의 내가 있음을 안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분별의 옷을 벗고 나면 분별의 옷을 입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육신너머의 존재가 우리의 삶을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유의한 내가 노력을 하고 무의한 내가 결과를 준다는 뜻이지요.

육신을 벌하는 신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영육을 함께 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도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는 이렇게 기도하셨지요.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26:39)

And he went a little farther, and fell on his face, and prayed, saying, O my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thou wilt.

 

 

 

영육이 하나가된 예수의 이 기도는 육과영의 분리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육신의 한계를 나타내는 가르침입니다.

다른 이의 인식은 내가 알 바 없고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뇌는 보리.  (0) 2022.04.11
사랑은 주고받는것.  (0) 2022.04.10
목표가 정해지면 시험이 따른다.  (0) 2022.04.08
우리는 누군가의 스승이자 제자.  (0) 2022.04.06
부자의 마음가짐.  (0) 202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