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247)

배가번드 2022. 9. 2.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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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고향에서의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마지막까지도 신의 안배를 기다려보았지만 나를 움직이는 신의 힘은 아무래도 또 한 번의 튕겨 오름을 향해 가고 있어.

럭비공과 같은 내 인생에 있어 잠시간 튀어 오르지 않음을 기대했지만 결국에는 튕겨져 올라야하는 내 운명을 확인하고 있는 거지.

나와 인연이 있는 많은 이들이 내 인생을 보며 수행의 길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인간과 신의 상관관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살피게 되는데 신이라는 존재는 내 삶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생각해.

지나간 시간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일들이었는데 어느 정도 인식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사람들은 누구나가 신이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기를 바라기만 할뿐 주변의 많은 이들조차 신의 자녀들이며 신의 입장에서 보면 쌍둥이 형제들과 같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거든.

그래서 깨달음에 한걸음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거지.

사실 어제 대구의 오래된 동수들과 함께 밤을 밝히며 차를 마시면서 했던 이야기들의 핵심은 이러한 일들이었어.

몇 분은 나보다 선배님들이었고 또 다른 몇 분은 나보다 뒤에 입문 하신 분들이었으니 내가 딱 정 중간에 위치해 있었던 셈이고 나이로 치자면 50초반의 내가 가장 어린 막내였는데 연세가 80가까운 분이 가장 연장자이고 내 바로 위라 해도 나보다 10년이나 연상이셨지만 내목소리가 가장 컸으니 내 에고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거든.

많은 동수들이 이러한 내 에고를 조금도 개의치 않았으며 밤새우리들은 차를 마시면서 도담(道談)을 나누고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던 거야.

지금 이 순간 다시 생각해보아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고 그 시간 우리들의 대화 속에는 신이 함께 했기에 그러한 일이 가능했다는 확신을 하고 있어.

만약 어제의 대화에서 신이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분들로부터 치도곤을 당해도 몇 번을 당해야 했을 거야.

왜냐하면 어른들을 상대로 함부로 소리를 질러대질 않나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했으니 당연히 그러한 지경에 처해져야 마땅한 일이었거든.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소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평화로운 가운데 해피엔딩을 할 수 있었던 거지.

오늘 우리의 대화가 어제의 연장선이라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는데 그만큼 어제의 대화는 우리에게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남겼다고 할 수 있어.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수행에서 우상숭배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

어제 우리들의 대화에 참석한 여러분들 중에는 자신이 직접 체험으로서 만물동일체의 경지에 오른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셨어.

그 자리에 있는 분들 모두 특별한 인연이 있었지만 특별한 여러 가지 유형 중에 이러한 유형의 특별한 인연이었다는 거지.

대구에 오면 꼭한 번 만나 봐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깨달음을 얻어서이기도 했지만 입문초기부터 내 눈에 비춰진 모습 탓이었는데 특이한 말투와 행동만큼이나 수행에 대한 열정과 스승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셨기 때문이었어.

오래된 동수들이라면 이분을 모를 수가 없는데 밥그릇크기로 따지자면 전 세계 관음법문가족 중에서 가장 크다고 보면 정확해.

과거 96년도에 있었던 캄보디아 아쉬람 건설에 가족을 데리고 올인 한 것을 비롯해서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뒤에도 토굴에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만물동일체의 경지를 터득하고야 만 거야.

위대(胃大)한 사나이가 정말 위대(偉大)한 인물이 된 것이고 대단(大碫)한 사람이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낸 셈이었어.

결국 밥그릇 큰 사람이 큰 그릇이 된 것이나 진배없었는데 많은 이들은 내말에 동조를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물질적 성공을 최고로 칠 것이고 이분이 이룬 만물동일체의 경지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거든.

만물의 근원이 하나에서 출발 했다는 생각은 수행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지만 이분처럼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물론 이분이 득한 경지가 영적인 면에서 끝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이정도의 경지를 살아생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거라 할 수 있어.

내가 처음 대구에 와서 교대 앞에 자리한 러빙헛 식당에서 친구와 만나는 날 손녀를 데리고 사저님과 식사하고 계시는 사형을 뵐 수가 있었지.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은 이날도 어김없이 이어졌는데 나하고 약속을 하지 않은 사형을 그날 가족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안배가 아닐 수 없었던 거야.

너무나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정작 사형은 나를 보더니 먼저 모자를 벗어보였어.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었는데 사형이 나에게 모자를 벗어보였던 것은 내 머리가 하얗게 센걸 보고 자신도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했기 때문이었지.

수행자의 삶이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 내가 겪어야만 했던 많은 일들과 사형이 겪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들은 서로가 살아온 여정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고 그 반가움이 더욱 컸던 거야.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후에도 숱한 어려움을 헤친 끝에 지금은 작지만 과수원을 하나 장만하셨고 아드님들도 모두 가정을 꾸려 손자손녀까지 보셨으니 물질적인 면이나 영적인면이나 모두 성공을 거두신 분이라고 여겨져.

사형이 대단하실 수 있었던 뒷면에는 사저님의 노고 또한 컸었는데 사형이 캄보디아 행을 결정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는 분이셨어.

참으로 드물게 사람의 얼굴에서 빛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분이 바로 그러한 케이스야.

캄보디아 아쉬람 건설에 모든 가족이 가고난후 센터에서 명상하고 나오시던 사저님을 뵌 적이 있었는데 얼굴에서 약간의 금빛을 본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번에 뵈었을 때는 얼굴에서 황금빛이 엄청 크게 빛나고 있었어.

나는 사실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

평소 내가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정말 나는 뭔가를 볼 줄도 모르고 아는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이분에게서 빛을 보게 되는 거야.

나중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농사를 짓다가 지렁이를 보아도 금빛으로 보이고 세상만사가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이러한 일이 사저님의 영적성취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지.

그만큼 두 분이 수행에 전념하신 탓이었고 전심전력으로 스승을 따라 수행을 하신결과가 아닐까 해.

이두분이 우리수행자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이었는데 온 가족들이 그때당시 사회활동을 모두 접어버리고 캄보디아 아쉬람 건설에 올인 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 하더라도 영적성취가 어떨지 짐작이 가는 일이고 실패로 끝이 난 캄보디아 아쉬람 건설의 여파에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보여준 스승에 대한 신심이야말로 많은 수행자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어.

공장이 부도나고 잠시 피신을 해있는 동안 사형께서 집에 오셔서 이불까지 팔아주시더라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는데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소식을 묻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러한 일이 일어난 지도 20년이 다되어가는구나.

내가 대구에 내려와서 이분들의 과수원에서 밤을 샌 것이 벌써 세 번이나 되었는데 어제는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조금 특별한 시간이 되고 있었어.

어찌 보면 나를 보내는 송별회가 되기도 했고 수행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시간이 되기도 했던 거지.

그다지 높은 언성이 오가거나 논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내용만큼은 그리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거야.

우선적으로 포문을 연 것은 20년이 넘게 수행에만 전념해 오신 사형한분이셨는데 나에게 직격탄을 날리셨어.

스승님께서 오래전에 하셨던 법문 한 자락을 말씀하시면서 내 생각을 물어오셨는데 그 질문 속에서 그분의 인식이 흘낏 보이더구나.

 

무척 궁금하군요.

수행을 오래되신 분들이니만큼 깨달음에 대한 인식들이 대단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질문을 하셨는지요?

 

초기에 스승님께서는 이 세상에 정토를 건설하자는 법문을 하신 적이 있어.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 오신 거지.

아마도 늘 내가 영적인면만을 높이 평가하고 물질적인 면을 등한시여기다보니 이 같은 스승의 법문을 들어서 내 인식 정도를 가늠해보시고자 했던 것 같아.

 

안 그래도 그러한 점에 대해서 평상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면만을 부각시키고 값어치 있게 여길 경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물질적인 일을 등한시 하게 되거나 가볍게 여기게 되는데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물질세상을 발전시키는 일 또한 영적인 면에 비해서 절대 가볍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에게 있어서는 그 말이 맞아.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일은 스승의 법문이 절대 이세상의 발전을 뜻한 것이 아니라는 거야.

정토라는 말은 부처나 보살이 사는 곳을 뜻하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깨달음을 뜻하는 거지.

그랬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 20~21)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정확하게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와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열변을 토했어.

내가 왜 이렇게 열을 내서 말하게 되었나 하면 말이야.

많은 수행자들이 물질적인 면만 중하게 여길 줄 알지 정작 소중하게 여겨야하는 영적인면을 등한시 여기기 때문이었거든.

캄보디아의 아쉬람 건설이 무산된 일 때문에 많은 동수들이 관음법문을 떠나게 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질문과 맥을 같이 하기에 열을 내게 된 거였지.

처음 내가 입문을 한 후로 지금껏 스승께서는 물질적인 일에 치중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심지어 초기에는 물질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제자들이 물질적인 일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는지 나로서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아.

아쉬람 건설이 무산된 일을 놓고 많은 동수들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거야.

많은 이들이 관음법문을 떠난 이유가 왜 깨달은 스승이 망할 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나 하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어.

 

잠깐만요.

정말 이 같은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도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무소부재하고 편재하여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신의 앞날도 모른다고 한다면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푸 하하하하.

크크크크크.

후후후후후.

참으로 가소롭구나.

아들아!

너는 지금껏 무엇을 배웠니?

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하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는가 말이야.

만물동일체라는 개념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수 있다고 한다면 너처럼 질문할 수도 없을뿐더러 앞날을 예견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것이 분명해.

네가 지금 한 질문은 한마디로 말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물질세상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어야하고 앞날을 예견할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거든.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기복신앙의 전형적인 행태인데 큰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라 할 수 있어.

물론 무조건 실패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야.

성공 할 수도 있지만 실패 할 수도 있다는 말이며 깨달음과 물질적인 성공과는 함수관계가 많지 않다는 거지.

내가 왜 단정적으로 함수관계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면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함수관계가 성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거든.

완전한 깨달음이 아닌 경우에는 물질적인 일과 연결고리가 형성이 될 터이지만 정말 큰 깨달음의 경우에는 영과 육이 분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그래서 성경에는 너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해놓았는데 이 같은 점을 모른다고 한다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먼 나라 이웃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어.

나는 지금까지 말해왔지만 스승이야말로 정말 크게 깨달으신 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스승이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조금도 틀린바가 없다고 생각해.

 

스톱!

아무리 그래도 이 질문만큼은 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여러 곳에서 스승의 말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센터 전반적인 일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지 않았나요?

그러한 증거가 우리의 대화 곳곳에 버젓하게 기록되어있는데 오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는군요.

 

당연히 나는 그렇게 말을 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스승의 말씀에 반대되는 의견을 말한 것조차 스승의 말씀에 절대적인 찬성을 하기 위해서였거든.

부정이 부정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긍정을 얻어내기 위한 거라는 거지.

만약에 부정을 할 수 없으면 긍정도 할 수가 없으며 누군가가 부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단체는 한마디로 말해서 사이비단체로 전락을 하게 되고 스승은 마왕이 되고 말아.

앞서 말했다시피 아쉬람 건설이 무산되자 많은 이들이 스승을 비난하고 단체를 떠났는데 오로지 한쪽 면만을 보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어.

무조건 긍정만을 생각했기에 성공하리라 여겼고 부정할 줄 몰랐기에 실패함에 실망을 하게 된 거야.

성공과 실패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언제든지 실패를 해도 아무렇지 않고 성공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는 거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그 말씀에는 동의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실패와 성공이 하나라고 하고 실패를 해도 아무렇지 않다면 뭣 하러 일을 벌이겠냐는 거지요.

차라리 안하는 것이 훨씬 득이 될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

아들아!

우리에게 또 한 번 인식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은데 심도 깊게 생각해 보기로 해.

우리들이 처음 캄보디아를 간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그야 당연히 아쉬람 건설이지요.

 

아쉬람 건설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지?

 

그야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이고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이지요.

부수적으로 그 지역을 개발하여 주변의 원주민들에게는 복지혜택도 베풀기도 하구요.

 

그래?

그렇다면 아쉬람 건설이 과연 실패였을까?

우리들이 그곳에다가 학교와 병원건물을 지어놓았고 적지 않은 면적을 개발시켜놓았으니 누군가는 그 시설물을 쓸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 본다면 원주민들에게 건물을 지어준 셈이 아니겠니?

게다가 땅을 매입하기위해서 엄청난 돈을 캄보디아 정부에 지불하였으니 그 나라를 도운 셈이거든.

이렇게 놓고 보면 목적달성을 한 셈이니 실패가 아니네.

 

어째 이상하긴 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네요.

그러나 아쉬람 건설이 그들에게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궁극적 목적이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네 말이 맞아.

그렇다면 말이야.

아쉬람 건설에 참여했던 사형은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후 만물동일체의 경지를 터득했는데 이 같은 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

이 사형뿐만이 아니라 몇몇 분들이 깨달음을 얻었으며 캄보디아를 다녀오신 많은 분들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들이 센터의 주축이 되어 많은 일들을 하고 있거든.

그분들이 대부분 과거에 스님생활을 하시거나 타 단체에서 수행을 오래하시다 온 분들인데 왜 그분들은 떠나지 않을까?

그들이 떠나간 많은 분들보다 수행력이 모자라서 안 떠났다고는 하지말길바래.

내가 보았을 때는 이분들이야말로 수행을 제대로 아시는 분들이며 참된 수행자들이라고 생각해.

 

어째서입니까?

옳지 않다고 여기면 떠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요?

 

물론 떠날 수는 있어.

하지만 무엇 때문에 떠났는지는 자신의 수행력과 밀접한관계가 있거든.

앞서 말했다시피 아쉬람 건설이 실패로 끝난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분들은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산적해 있다고 봐야하는 거야.

아직 기복신앙의 형태를 벗지 못했다는 말이며 지금 자신들이 속해져있는 단체나 종교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또다시 떠나게 되는 일을 반복하게 될 거라는 거지.

 

그렇다면 남아있는 분들의 수행력이 모두가 대단하다고 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분들 모두가 과수원을 하시는 분처럼 만물동일체의 경지를 터득하신 것은 아닐 텐데 어째서 남아계신 분들이 대단한 수행자들이라 평가하시는지요.

 

그것은 말이야.

성경 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는데 다윗과 솔로몬이 우리에게 그 해답을 주고 있거든.

 

어째서 입니까?

그분들이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요?

 

너도 알겠지만 다윗이나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거든.

물질세상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왕들이었지만 오로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들을 한없이 낮은 곳에 임하게 할 수 있었어.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내세우지 않았던 거야.

이러한 까닭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 거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물질세상을 바라보는 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물질세상에서 아무리 최고의 자리에 오르더라도 결국에는 헛되다는 것이거든.

천국을 가기위해서는 물질세상의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국은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는 곳이라는 말이야.

이러한 까닭에 남아있는 분들이 대단한 것인데 그분들은 아쉬람 건설이 실패 본 것은 영적인 깨달음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었어.

게다가 자신들이 이미 스승에게 출가를 했다고 여겼고 스승이 우리 안에 내재한 신성과 불성을 드러낸 분이라 믿고 있으니 떠날 필요가 없었던 거지.

 

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는 분을 신격화 하는 것은 분명한 우상숭배가 아닌가요?

아무리 스승이라 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의 몸이 분명한데 신성시 여긴다는 것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들아!

내가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어.

우상숭배라는 것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자신을 정말 한없이 낮출 수 있고 스승을 최고의 존재로 여길 수 있을 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관음법문의 동수들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무조건 믿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것인데 자신이라는 에고가 완전히 무너질 때 내면의 신성이 드러나게 되는 거지 스스로를 내세워서는 절대 깨달을 수가 없어.

아쉬람 건설이 무산되자 많은 사람들이 떠난 것도 바로 이러한 에고가 문제가 된 거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생각했을 때는 실패로밖에 생각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고 스승을 떠날 수 있었던 거야.

신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것으로서 자신이 신을 능가했던 건데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

 

어째 말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신이라면 이래야한다는 것이 어째서 신을 능가하는 일이 되는지요?

 

너는 아직도 모르겠니?

신이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은 신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어떻게 신이 인간들의 잣대로 가늠이 될 수 있겠으며 판단을 내릴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감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 거지.

마찬가지의 의미로 스승을 자신이 평가함으로서 스승보다 자신이 더 높아졌기 때문에 스승을 비난하고 욕할 수가 있었으며 떠난 거라 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아직도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있는데 자신내면에 자리한 신성과 불성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자신이라는 에고를 내려놓아야하거든.

 

그렇다고 하면 떠난 사람들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고 수준이 낮다는 말씀이신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볼 수 있어.

 

아니!

지금까지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바뀌셨네요.

 

지금까지는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해서 위로 차 말해주었지만 더 이상 그러한 말을 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야.

내가 가만히 느껴보면 너와의 대화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단체에서 떠난 사람들도 상당수 있거든.

이들을 위해서 때로는 스승을 비방하기도하고 단체의 일에 대해 반대의견도 냈던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는 때가 된 거라 할 수 있는데 나와의 인연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야.

숨어서 온갖 판단을 하는 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작은 인연이나마 소중이 여기기에 지금까지 이어온 것인데 그들을 위해서라도 인연정리를 할 필요가 있는 거지.

자신들은 우상 숭배자가 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야 겸손할 수가 있으며 자신들의 목표점에 한걸음 다가설 수가 있거든.

깨진바가지를 들고 온 우주를 돌아다녀도 물을 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자신이라는 에고가 무너지지 않으면 절대 내면의 신성이나 불성이 드러날 수가 없으며 만물동일체의 체험이 올수가 없어.

그러한 까닭에 깨달음을 얻고서 떠나는 것과 깨닫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구분 지어져야 하는 거야.

스스로 생각해서 깨닫지 못하고 떠났다고 여겨진다면 지금의 스승을 비난하거나 욕을 할 만큼의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해.

 

그런데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는 육신과 영이 합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앞서 당신께서는 육과영이 분리된다고 표현하셨는데 이점을 명확하게 밝혀주십시오.

 

아들아!

우리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아서 지금의 네 질문에는 답을 해 줄 수가 없어.

아쉽지만 다음시간으로 미루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

너와의 대화를 너무나 급하게 진행시키다 보니 약속된 시간이 다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오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것을 약속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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