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배가번드 2022. 12. 15.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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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시험을 쳐보면 나타나기 마련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신과 하나 되기 위해 열심히 구도의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결과가 주어집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 hath made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8:3)

For what the law could not do, in that it was weak through the flesh, God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for sin, condemned sin in the flesh: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That the righteousness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8:5)

For they that are after the flesh do mind 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ey that are after the Spirit the things of the Spirit.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For to be carnally minded is death; but to be spiritually minded is life and peace.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in Christ Jesus)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했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고 한 점과 정죄함이 없다는 부분입니다.

성령 안에 머물러야한다는 뜻에서 그냥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고 기록했으며 성령 안에 머무는 이는 비난조차 받지 않는다는 뜻에서 condemnation라는 단어를 쓴 겁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이는 세상과는 무관해진다는 뜻이지요.(성령이 깨어남, 그리스도예수와 하나 됨)(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그래서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죽음과 죄의 법에서 해방시켰다고 했습니다.(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죽음과 죄의 법이란 이세상의 법칙이니 그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육신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그리스도) 안에 머물 때(하나 됨)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어지는 구절이 말해줍니다.

육신이 약해서 언제나 영을 누르고 있기에(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기에) 성령과 하나 되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이 죄 있는 육신으로 아들을(예수) 보내(God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죄를 육신에만(사는 동안만) 비난받게 하셨다고 합니다.(3절)

그래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는 이는 율법이 바로서는 것이 가능하게 만든다고 했지요.(4절)(the righteousness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여기에서의 율법이란 이세상의 법칙을 가리킵니다.

육신을 따르는 이에게는 육신적인 일이 주어지기에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 했고 영을 따르는 이에게는 영적인 일이 주어지기에 영의 일을 생각한다 한 겁니다.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법칙이자 우리가 만들어놓은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우리 안에서) 만족하게(만족될) 할 것이라 한거지요.(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이 같은 일은 우리스스로가 경험해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의 생활상을 보면 내가 영을 따르는 사람인지 육을 따르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다가와 있는 현재의 일들은 모두가 나로 인해서이고 내가 원해서 온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지요.

자신이 영생을 얻을 사람인지 낮은 천국을 갈 사람인지 지옥에 떨어질 사람인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기 마련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영생을 갈구하고 소망하는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내게 누가 와있고 내가 어떤 가르침을 원하는지를 보면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6절에 육신의(세속적인)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에게 일어나는 일로서 영과는 무관합니다.

그래서 육신에 한정된 인식의 사람에게는 죽음과 동시에 세상은 끝이 나지만 영적인 인식 속에 머무는 사람은 영생을 얻어 평화를 얻게 된다는 말을 하는 거지요.

우리가 살아생전 성령과 하나 된 예수님 같은 분을 만나 영적인 길을 걷는 일에는 이런 일이 따른다는 것을 로마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길을 걷는다고 해서 반드시 세속을 벗어나 기도원이나 절간에 가야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항상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고 영생을 갈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방에 이런 글을 걸어놓았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이런 이유로 나에게는 언제나 영적스승이 함께 하고 있으며 내 주변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는 나의 스승이고 제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들 안에는 성령이신 하나님이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