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진정으로 믿는자는 삶이 바뀐다.

배가번드 2023. 9. 24.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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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교회를 나갔습니다.

주일마다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몇 주간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일요일 나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옆자리에 앉으신 분 때문에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던 형제한분이 옆자리에 앉았는데 사탕을 권하는 겁니다.

사양할 사이도 없이 내놓는 바람에 얼떨결에 받고야 말았는데 이로서 그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으며 교회전체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첫 번째로 생각하게 된 것은 그분의 외형적인 모습을 비추어볼 때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이라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로 생각하게 된 것은 성경책에 밑줄이 수없이 그어져 있는 점을 볼 때 성경을 열심히 본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 세 번째로 찬송가 부르는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는 점을 볼 때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성경을 보는 각도가 틀리기는 하겠지만 교회목사님으로부터 구원의 소식을 듣고 은혜를 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도말시켰다는 교리를 진심으로 믿고 있으며 자신의 죄가 씻어져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피에 대해 받아들이는 점이 나와 다르다 할지라도 일단 자신이 받은 것이 확실한 구원이라는 믿음은 분명해 보였으며 구원받은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이 사탕을 건네는 단순한 행동하나만 보더라도 진심으로 나를 형제로 여기고 있음이 느껴졌고 성경말씀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지요.

찬송가를 부를 때 그저 부르는 것과 가사의 뜻을 알고 느끼면서 부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쪽귀가 어두운 나에게 분명하게 들릴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에 그분의 믿음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놀라운 날이었네 영원히 못 잊을 날

어둠에 길 잃고 헤매던 나 주 찾아 주시었네

고마운 고마운 친구였네 내 마음 채웠으니

괴로움 걷히고 기쁨이 넘치네 주 나를 건지셨네

 

하늘의 영광 내 맘 넘치네

십자가에 나 구원하셨네

내 죄를 씻었네 어두운 밤 밝았네

하늘의 영광 내 맘 넘치네

 

확실하게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기에 은혜찬송의 이가사가 그분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며 큰소리로 부르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일을 보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의 이번 주 설교내용을 보면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지만 목사님의 성경해석과는 무관하게 내 옆자리에 앉은 형제분의 믿음은 누구도 깨트릴 수 없이 확고한 것이었지요.

이러한 점을 볼 때 믿음이란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주 목사님이 해주신 설교 중에 나와 다른 점을 말해볼까 합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낳게 되는 이유를 분석해보고 그러한 결과를 생각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3:3)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3:23)

 

이 말씀을 목사님은 인간의 원죄가 각인된 이유라고 하셨지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에 원죄가 생긴 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뱀의 말이 옳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하와가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죽지 않았으며 그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5절에서 뱀이 말하길 선악과를 먹게 되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 했는데 22절에 하나님께서 같은 말씀을 하셨으므로 뱀이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성경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먼저 에덴동산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에덴의 뜻은 “평평한 땅, 비옥한들, 즐거움, 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죽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다는 것은 육과 영, 둘 중에 하나가 죽은 겁니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 소화가 되는지라 이 내용은 선악의 경계가 무너짐을 뜻한다고 봐야하며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상황을 일러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말하는 것인데 빛의 세계에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이와 같이 선악이 없는 빛의 경계인 에덴동산에(평평한 곳, 즐거움만 가득한곳) 머물 수 없기에 쫓겨난 걸로 묘사한 겁니다.

이 같은 해석은 반드시 영적 체험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오해와 불신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인연이 없는 이는 나로부터 멀어지라 반복해서 말하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대로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 죄를 사해주셨다는 점을 믿는 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 생각해서 안 될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죄가 차고 넘친다는 점은 생각해 봐야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죄까지 모두 사해놓았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시공간이 무너진 빛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을 깨달았을 때 유효한 겁니다.

만약 미래 죄까지 모두 사함 받았다면 징계는 없어야 하지만 알다시피 구원받은 이들도 징계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 예수님보혈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버리면 훗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 누구의 영접을 받을 건지요.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했는데 예수님의 피만이 구원이라고 한다면 예수가 피 흘리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잠자고 있다는 말입니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가 빛의 몸으로 나타난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르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본인들이 잘 알거라 생각됩니다.

진실로 말하건대 본인들이 받았다는 구원을 내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인즉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