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집으로 초대된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과연 액면대로 사람이 초대된 것인지 성령으로서의 베드로가 초대된 것인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행10:23)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행10:24)
앞서 말한 대로 성령으로서의 베드로는 영적으로 갈구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을 유숙(留宿)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형태는 욥바(뜻: 아름다움)의 형제 몇 사람도 함께 가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가운데도 몇몇은 성령과 함께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이지요.(23절)
마찬가지로 가이사랴의 뜻도 로마황제의 땅인지라 세상을 뜻하며 그곳에서도 고넬료처럼 성령과 함께할 만큼의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있었음을 일가와 친구들에 비유해 놓은 겁니다.(24절)
이러한 해석의 타당함이 다음구절에서 확인됩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행10:25)
And as Peter was coming in, Cornelius met him, and fell down at his feet, and worshipped him.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행10:26)
25절에서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절하며 하나님 대하듯 합니다.
꿇어 엎드려 숭배했다고 했으니 하나님처럼 대접한거지요.(fell down at his feet, and worshipped him)
이 같은 장면은 고넬료가 인자를(성령을 드러냄) 알아보았다는 뜻으로 성령이 임하실 자격을 갖추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절하는 그를 일으켰는데 이는 성령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자를 대함에 있어 육신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베드로가 성령을 드러낸 것만은 틀림이 없으며 예수님처럼 인자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인자로서의 베드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것을 보고(행10:27)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10:28)
And he said unto them, Ye know how that it is an unlawful thing for a man that is a Jew to keep company, or come unto one of another nation; but God hath shewed me that I should not call any man common or unclean.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행10:29)
Therefore came I unto you without gainsaying, as soon as I was sent for: I ask therefore for what intent ye have sent for me?
성령에 대해 갈구하는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것을 모인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 묘사하고 있습니다.(27절)
그런데 28절의 해석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유대인이 그들만의 집단을 지키려하는 것이나(a Jew to keep company) 다른 이념이 하나가 되는 상태는(come unto one of another nation) 사람에게 적법하지가 않다고 했지요.(it is an unlawful thing for a man)
이말 인즉,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만의 종교를 지키거나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것은 인간들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도 평범하거나 깨끗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I should not call any man common or unclean) 보여주었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앞선 시간에 비전을 본 것에 대한 해답이지요.
결국 앞서 비전을 통해 베드로에게 먹으라고 했던 것은 사물을 대함에 있어 분별 심을 버리라는 뜻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베드로는 거부감 없이 곧바로 요청에 응했으며 이유가 뭔지를 되물었던 겁니다.
여기에 대해 고넬료는 자신이 본 비전을 말해줍니다.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행10:30)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행10:31)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행10:32)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Immediately therefore I sent to thee; and thou hast well done that thou art come. Now therefore are we all here present before God, to hear all things that are commanded thee of God.
위 내용은 앞선 시간에 해석을 했으므로 따로 말할 필요가 없지요.
다만 한 번 더 말해줄 것은 숫자에 대한 겁니다.
구태여 나흘전이라 한 것은 사람의 숫자이자 인자의 숫자인 4를 나타내기 위함이며 기본소양을 모두 갖춘 사람에게(9) 하나님이신 성령이 임하여 완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9+1=10)
액면 적으로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것이지만 속뜻은 성령이 함께 하게 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33절에서 고넬료가 말하길 하나님 앞에 있다 한거지요(we all here present before God)
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베드로 대하기를 성령이신 하나님 대하듯 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러나저러나 베드로가 성령을 드러내어 하나님과 하나 된 인자(人子)로서 대접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이러한 점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처럼 받드는데 누가 이러한 일을 이해하겠냐는 겁니다.
그나마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망정이지 현실에서 이러한 일을 보면 당장 사이비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예수생존당시에 이스라엘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과 하나 된 예수와 같은 이를 하나님 대하듯 하지 않고는 결코 성령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말은 나 홀로목사가 사사로이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8)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이웃조차 하나님처럼 대접해야 하거늘 성령의 불씨를 나누어줄 영적스승을 하나님처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주변사람을 하나님처럼 떠받들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담고 있는 그릇임을 알라는 뜻이지요.
하다못해 믿지는 않더라도 비웃거나 욕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그 비웃음으로 비웃음 당할 것이며 욕하는 일로인해 욕을 보게 되기에 노파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끝마침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으므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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