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가 명상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부터 과거의 행적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나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기 시작하자 살아온 과거들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명상단체에 입문을 한 것이 30대 초반이었으니 그때껏 지었던 죄상이 하나둘 떠올랐던 거지요.
내 기억 속에 부끄러웠던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음을 확인하였으므로 너무나 괴로웠으며 지울 수 없는 내 죄로 인해 감히 눈을 감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일찍이 육조혜능이 말씀하신 ‘좌선(坐禪)’을 몸소 경험하게 된 셈입니다.
“좌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고 앉는 것이요, 선이란 자신 스스로의 죄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요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육조혜능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다른 것 같지만 속 깊은 뜻을 보면 같은 겁니다.
먼저 액면 적으로만 보게 되면 육조혜능의 말씀은 육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데 그치겠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훨씬 상회하는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지은 죄만 보게 됨으로 괴롭겠지만 어느 순간 죄를 짓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바로 본연(本然)의 우리 자신인 것이며 불가에서는 이를 본래불(本來佛)이라 말합니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꿈을 꾸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되지요.
꿈을 꿀 때 내 꿈을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꿈을 꾼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겠지만 식(識)이 맑아지면 꿈을 꾸는 동안에도 자신이 꿈을 꾼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어있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면 꿈속에서조차 꿈을 꾸는 자신을 바라보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며 관조자(觀照者)의 시각을 갖게 되는 겁니다.
행위를 하는 내가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이가 내육신의 주인이자 내 본래 영혼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미 목욕했다는 말은 육신이 아니라 본래모습인 영혼으로 거듭났다는 말이므로 빛이신 성령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온몸이 깨끗하다는 말씀을 하신거지요.
그러나 발은 씻어야한다고 했습니다.
발은 걸어온 행적을 비유한 것으로 우리가 살아오는 가운데 지은 죄를 가리키는 겁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더 이상의 정죄함이 없다는 말을 하겠지만 이 말씀은 틀리고도 맞습니다.
틀리다는 말은 육신으로 지은 죄는 육신이 갚아야 하기에 하는 말이며 맞는다는 것은 성령을 깨닫고 나면 온몸이 깨끗해지는 것과 같아서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에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이미 영혼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자신이 살아나오는 동안, 혹은 사는 동안 지은 죄는 반드시 갚아야한다는 거지요.
사실 이러한 일은 구태여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인들 스스로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보면 죄를 지을 때마다 곧바로 벌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발은 씻어야한다는 예수말씀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만약 크리스천일 경우 죄를 지었는데 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큰일인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겁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 죄를 씻어주시는구나 생각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게는 축복과 저주가 하나입니다.
남들이 보았을때는 내가 저주아래 놓인 것 같지만 속깊은 내막을 보면 은혜속에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일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사53:1)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이 말씀을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거라고 하지요.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육신예수가 아니라 성령과 하나 되어 인자가 된 상태에서의 예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절을 보다시피 여호와의 팔이 나타난 이에 대해 적용되는 말이므로 예수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육신의 지은 죄를 모두 감당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이러한 해석을 낳지 못한다면 예수만이 세상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어 누구도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 기독교종파에서는 예수 재림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이는 명백히 잘못된 교리이며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경해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구원을 얻게 해주고 영생을 얻게 한다 말하지만 실상은 천당행 표를 파는 행위나 다름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나 영생은 같은 것이고 영생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예수 재림을 기다려야할 까닭이 없지요.
이러할진대 누군가 예수와 동일해 졌다 말하면 경기를 하듯이 놀라며 미친놈 취급하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입니다.
물론 예수와 동일해졌다 말하며 천당행 표를 팔아먹는 인간들도 부지기수로 많은지라 그럴 만도 하지만 그렇다해도 본인들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었다면 예수와 동일해져야하는 겁니다.
본인들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었다고 말하기에 나또한 그렇다고 말하면 귀신들린 사람 취급을 하는 모순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으라고 하기에 받았노라 했고 영생의 하늘에 올라야한다기에 올랐다고 했을 뿐인데 왜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지 묻고자 합니다.
또한 여러분을 스승으로 만들기 위해 오셨다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영적스승으로서의 길을 걷고자하는데 왜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하는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가 성령으로 자신 안에서 되살아나지 않았다면 영생을 얻은 것도 아니며 구원을 얻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영생을 얻었고 구원받았다 말한다면 할 말이 없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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