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강한믿음이 은혜를 받게 한다.

배가번드 2025. 6.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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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지난시간을 통해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쓰신 책이라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얻게 하는 가르침이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믿느냐는 것은 개인의 역량일지 모르지만 빛이신 성령은 사람과는 무관하고 종교와도 무관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믿음을 달리한다해도 최종목적지가 빛의 세계에 있어야 하며 세상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연 이러한지 바울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2:8)

(For he that wrought effectually in Peter to the apostleship of the circumcision, the same was mighty in me toward the Gentiles:)

 

할례자의 사도를 위해(to the apostleship of the circumcision) 베드로 안에서(in Peter) 효과적으로 변화를 초래한다(wrought effectually) 했으니 반석 같은 믿음으로 마음에 할례가 이루어진 이에게는 사도의 가르침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the same) 이방인을 향한(toward the Gentiles) 바울에게 강하게 작용했다(was mighty in me) 말하고 있지요.

이 말씀인즉, 강한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불씨가 전해진다는 겁니다.

이 내용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마치 할례자를 위한 사도와 무할례자를 위한 사도가 따로 있다 여기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2:9)

And when James, Cephas, and John, who seemed to be pillars, perceived the grace that was given unto me, they gave to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s of fellowship; that we should go unto the heathen, and they unto the circumcision.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갈2:10)

Only they would that we should remember the poor; the same which I also was forward to do.

 

야고보(야곱)의 뜻은 ‘발뒤꿈치를 잡는 자’이고 게바는 ‘바위’라는 뜻이며 요한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입니다.

이들 세 명이(3=삼위일체) 기둥으로 여겨진다(seemed to be pillars) 했으니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점이 기본으로 받쳐져야한다는 뜻이지요.(9절)

이는 시험을 이겨내는 강한믿음이 은혜를 받게 한다는 뜻으로 바울자신이 그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은총이 바울에게 주어진 것을 인식한다 했습니다.(perceived the grace that was given unto me)

그리고 바울자신이 성령을 깨달았음으로 바나바와 자신에게 그들이 동료로서의 오른손을(the right hands of fellowship) 내밀었다했지요.

바나바의 뜻은 ‘권면자, 권위자’이고 오른손은 정의롭다는 뜻이므로 바울이 성령이 드러났음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요약하여 정리해보면 바울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나 권면자로서 사도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0절에서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기를 바랐다 한 겁니다.(they would that we should remember the poor)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하였지만 만약 사도들의 임무가 달라질 경우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사도들의 임무라는 것은 완전해져있는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미완성된 사람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성령의 불씨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므로 마치 사도들의 임무가 다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며 속뜻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 역시 올바른 해석을 낳지 못하면 크게 오해하게 되지요.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갈2:11)

But when Peter was come to Antioch, I withstood him to the face, because he was to be blamed.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갈2:12)

For before that certain came from James, he did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were come, he withdrew and separated himself, fearing them which were of the circumcision.

 

성경상의 게바는 지명으로도 쓰이고 베드로의 별명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쓰였든지 그 뜻은 ‘바위’이며 믿음을 가리킵니다.

안디옥의 뜻은 ‘반대자’이므로 이 내용은 바위와 같이 강한 믿음을 가진 이의 마음 안에서 부정성이 드러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으로서의 바울이 그가 책망 받을 일로인해(he was to be blamed) 그의 면전에서(to the face) 견디는 것으로(I withstood him) 묘사하고 있는 거지요.(11절)

그러므로 12절 역시 속뜻을 헤아려야함은 물론입니다.

시험을 통과해야(야고보) 성령이 임하시는 것인데 중도에서 이방인의 것들을 받아들였고 그 자신을 믿음의 길에서 내려서게 만들었음을 비유로서 말해놓고 있습니다.

야고보로부터 어떤 이가 오기도 전에(성령이 임하시기 전) 이방인들과 함께 먹었으므로 할례 자가 오자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즉, 믿음의 길을 걷는 이가 세상적인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자신을 믿음의 길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빛이 아닌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2:13)

And the other Jews dissembled likewise with him; insomuch that Barnabas also was carried away with their dissimulation.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무리들과(the other Jews) 목회자들을(Barnabas) 싸잡아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에게 복음말씀을 전한다(바나바=권면자, 권위자) 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달과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 모두가 위선에 휩쓸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들을 향해 바울은 추상같이 호령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2:14)

 

액면대로 보자면 베드로를 나무라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목회의 길을 걷는 이들을 향해 질타의 몽둥이를 날리고 있는 겁니다.

입으로는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말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라 말은 하면서 본인의 삶은 이방인과 조금도 다름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거지요.

아마도 나 홀로목사에게 오는 분들은 이렇지 않으리라 여겨지는바 다음시간에는 이러한 일에 대한 결말을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