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구원을 받았다면 먼저 용서하라.

배가번드 2025. 7. 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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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실수를 사람들이 못 본 척 하거나 이해해주었으면 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바람과는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수가 까발려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유가 있다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마6:14)

For if ye forgive men their trespasses, your heavenly Father will also forgive you: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5)

But if ye forgive not men their trespasses, neither will your Father forgive your trespasses.

 

이 말씀을 보건데 우리의 실수를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이러한 이유로 내 실수가 드러나 누군가로부터 질타를 받게 될 경우 나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용서를 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내용이 구약에 나옵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출21:22)

If men strive, and hurt a woman with child, so that her fruit depart from her, and yet no mischief follow: he shall be surely punished, according as the woman's husband will lay upon him; and he shall pay as the judges determine.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출21:23)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출21:24)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21:25)

 

액면대로 보면 마치 당한만큼 복수를 하라는 듯이 보이지만 속 깊은 뜻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먼저 22절을 보면 육신에 따른 죄에 대한 벌칙이라는 점을 알게 되지요.

세상적인 판결에 따라 심판을 받으라는 말이며 23절 부터는 육신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죄에 대한 벌을 뜻하는 겁니다.

그래서 23절에서 다른 해가 있으면 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법에 따른 벌만이 아니라 영적인 벌을 받게 된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와 싸우고 나서 화해를 했고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해도 때린데 대한 응보는 받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용서받는 법을 가르쳐주신 겁니다.

현실세계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는 구약말씀과 같은 일이 적용되고 있음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죄에 대한 벌이 주어졌다 생각하고 기꺼이 용서하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신너머의 세계인 영의 세계에 대한 가르침으로 영생을 얻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보자면 반드시 심은데 대한 결과물이 주어져야 하지만 영생의 하늘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if ye forgive men their trespasses) 천부께서도 용서한다 말씀하신 겁니다.(heavenly Father will also forgive you)

이러한 점에 대해 예수께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바 있지요.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8:7)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요8:8)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9)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8:10)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

 

이 내용은 간음한 여자를 정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의 내용을 예로 들며 인과법을 말하자 예수께서는 사람이 만든 법이 아니라 하늘의 법을 설하신 겁니다.

성령을 깨닫게 되면 세상 법을 벗어나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11절에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했습니다.

육신을 가진 채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이 말씀은 당연히 성령을 깨달아야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타인에 대한 심판의 돌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러한 점을 깨닫게 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해 놓은 거지요.

그러므로 진정 성경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때는 이러한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잘못을 용서받고는 싶지만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일은 세상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본인은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타인의 실수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반드시 자신의 행위에 따른 업보가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구원을 얻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오늘 예문에서도 보았듯이 영생의 하늘에는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는 만큼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형제의 잘못조차 용서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육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 내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며 다만 본인이 용서받고 싶다면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이는 드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넘지 못한 산과 강은 언제나 내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당면하는 현실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내가 뿌려놓은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씨앗을 심을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내게 주어지는 현실에 대해 언제나 감사를 하고 있으며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고 하는 겁니다.

타인의 경우에는 내 알바 아니지만 성령을 깨닫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일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용서받고 싶은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