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갈라디아서 4장에 인용된 이사야서를 상고해보겠습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
Sing, O barren, thou that didst not bear; break forth into singing, and cry aloud, thou that didst not travail with child: for more are the children of the desolate than the children of the married wife, saith the LORD.
낳지 못하고(didst not bear) 불임한 자는(barren) 노래하기 시작하라(break forth into singing)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더불어(with child) 산고(産苦)를 겪지 않은 너는(thou that didst not travail) 크게 외치라고(cry aloud) 합니다.
여호와께서 결혼한 여인의 자식보다(than the children of the married wife) 외로운 자의 자녀가(the children of the desolate) 더욱 많기 때문에(for more) 외치라고 하셨으니 이는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빛이신 성령은 혈육과도 무관하고 물질세상과는 별개의 존재임으로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다음 내용역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54:2)
Enlarge the place of thy tent, and let them stretch forth the curtains of thine habitations: spare not, lengthen thy cords, and strengthen thy stakes;
네 장막의 장소를(he place of thy tent)확장하라(Enlarge) 했으니 인식의 폭을 넓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너희거주지의 커튼을(the curtains of thine habitations) 넓히라고(stretch forth) 한 겁니다.
이는 육신을 성령이 담겨있는 장막으로 보고 하는 말로서 성령이 가려져 있다는 말이지요.
성령이 완전히 드러나게 만들려면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기지 말라(spare not) 했으며 너의 줄을 길게 하고(lengthen thy cords) 너의 말뚝을 튼튼히 하라고(strengthen thy stakes) 합니다.
이 말씀인즉 빛이신 성령이 드러나려면 육적인 속성이 완전히 무너져야 하며 성령과의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며 믿음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사54:3)
For thou shalt break forth on the right hand and on the left; and thy seed shall inherit the Gentiles, and make the desolate cities to be inhabited.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사54:4)
Fear not; for thou shalt not be ashamed: neither be thou confounded; for thou shalt not be put to shame: for thou shalt forget the shame of thy youth, and shalt not remember the reproach of thy widowhood any more.
불임하는 자가 자녀가 있을 턱이 없으므로 3절 내용은 성령으로서 만 백성 안에 머물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빛이신 성령은 방향성을 상실해있으므로 좌우로 깨쳐 나아간다(break forth) 했으며 네 씨가(thy seed) 이방인의 상속자가 되고 황량한 성읍을 거주할 수 있게 만든다 한거지요.
즉, 성령의 불씨가 심어지게 되면 믿지 않던 사람조차 영생을 상속받게 되며 황량한 마음 밭에 성령이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되살아나기 까지는 험난한 시련의 시간이 주어지게 되므로 두려워 말라(Fear not) 했고 당혹해 하지 말라(neither be thou confounded) 했습니다.(4절)
이와 같은 일은 씻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일시적인 일이므로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을 것이고 과부의 책망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과거의 잘못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두렵고 당혹감이 들 수 있지만 일단 성령의 내재하심을 알았다면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54:5)
For thy Maker is thine husband; the LORD of host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shall he be called.
지금 이 내용은 성령을 담고 있는 육신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육신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내재하신 성령과 하나라는 뜻에서 남편에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주인들의 여호와는(the LORD of hosts) 그의 이름이라 했으니(육신의 주인이라는 뜻) 내재하신 성령을 가리키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는(the Holy One of Israel) 너의 구세주라 했으므로(thy Redeemer) 이 또한 성령을 뜻합니다.
그래서 전체 땅의 하나님이라(The God of the whole earth) 불릴 것이라(shall he be called) 한거지요.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6)
For the LORD hath called thee as a woman forsaken and grieved in spirit, and a wife of youth, when thou wast refused, saith thy God.
버림받은 여인이나(as a woman forsaken) 영적으로 비통해하고(grieved in spirit) 젊은 시절의 아내처럼(a wife of youth) 여호와께서 부르신다고 합니다.(the LORD hath called)
이 말씀인즉, 하나님께서는 본인이 뉘우쳐 회개하고(버림받았음을 자각함) 영적으로 슬퍼하거나(본인의 죄인 됨을 자각함), 혹은 본인이 하나님과 혼인관계에 있음을 아는 이를 부르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을 알았기에 바울은 갈라디아 4장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했던 겁니다.
자신이 성령의 가르침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에 따라서인 만큼 세상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었지요.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 것이지만 너희들은 그나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있으며 너희가 선택받았음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깨닫는다는 것은 온 세상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값어치 있는 거라는 말씀을 드리며 이사야서 강해를 마칩니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은 사랑의 마음 안에서 작동한다. (1) | 2025.07.25 |
---|---|
신앙생활은 범을 피할 수 있는 나무. (9) | 2025.07.24 |
성령과 연합은 영육의 합일. (6) | 2025.07.22 |
여종의 아들은 계승자가 될 수 없다. (10) | 2025.07.21 |
영생은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것. (4) | 2025.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