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시간 여러분과 함께 내재하는 성령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만나보셨는지요.
나 홀로목사 주변에 계시는 분들을 보게 되면 성령을 제대로 깨달은 분들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들 육신에 대한 일과 물질적인 일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정작 자신의 영혼을 위하는 분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 말하겠지만 과연 그러한지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생각하며 지내는지 영생을 갈망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거지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 만족이 없다면 체험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재한 성령이 되살아난다면 자신의 신구의(身口意) 모두를 성령이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 불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깨어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것인데 어찌 불만과 불평이 있을 수 있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드러나거나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말로서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찍이 성현이 진정으로 아는 이는 행동하는 자라 하신 바와 같이 삶에서 성경의 가르침이 묻어나지 않으면 성령을 안다고 할 수 없으며 영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요16:1)
These things have I spoken unto you, that ye should not be offended.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하는 이유가 제자들이 상처받지 않게(not be offended) 만들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뭔가 미리 말하지 않으면 제자들이 기분 상할 일이 생긴다는 말이지요.
도대체 어떤 말인지 궁금해집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16:2)
They shall put you out of the synagogues: yea, the time cometh, that whosoever killeth you will think that he doeth God service.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16:3)
And these things will they do unto you, because they have not known the Father, nor me.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요16:4)
But these things have I told you, that when the time shall come, ye may remember that I told you of them. And these things I said not unto you at the beginning, because I was with you.
사람들이 교회당에서 제자들을 내 쫒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답니다.
그래놓고서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말한다는 거지요.(2절)
이들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아버지와 예수님을 몰라서라고 합니다.(3절)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4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뭔가를 말씀해주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은 제자들이 교회에서 출회조치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생각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며 처음부터 말씀하시지 않은 이유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지 않을 때라야 이 말씀이 효력을 발생한다는 뜻일 겁니다.
도대체 이 말씀이란 무엇일까요.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요16:5)
But now I go my way to him that sent me; and none of you asketh me, Whither goest thou?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16:6)
But because I have said these things unto you, sorrow hath filled your heart.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Nevertheless I tell you the truth; It is expedient for you that I go away: for if I go not away, the Comforter will not come unto you; but if I depart, I will send him unto you.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은 육신을 버리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께서 돌아가신다고 하는데 제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5절)
그러나 6절을 보면 제자들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채워졌다고 했으니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5절에서 묻지 않은 것은 예수님 육신의 행방이 아니라 영혼(성령)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7절에서 예수님이 영혼(성령)의 실상을 말해준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께서 가야지만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혜사는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이신데 어찌하여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야 다시 보혜사(성령)를 보낼 수 있다고 하셨는가 말입니다.
다시 보낼 것 없이 그냥 머물러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그렇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하나 된 영으로서 하늘나라와 우리 몸 안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런 나 홀로목사의 말을 오해하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거시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으로 시공간이 무너진 영의 세계를 연상하면 됩니다.
비록 잠들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 안에는 당연히 성령이 들어앉아 있지요.
이렇게 잠들어있는 제자들 내면에 자리하는 성령이 예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됨으로서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을 때는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집중이 되어있으므로 성령이 깨어나지 못했던(필요가 없었던) 것이며 예수가 돌아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각개인의 내면에 집중 할 거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예수께서 보혜사를 보낸다고 표현한 거지요.
그러면 보혜사가 오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겠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And when he is come, he will reprove the world of sin, and of righteousness, and of judgment:
그가 온다는 것은 성령이 깨어난다는 말이며 그가 깨어나면 죄와 정의, 심판에 대한 것을 나무랄 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인즉 성령이 선과 악을 구분 짓고 불의와 정의를 가려줄 것이며 제대로 된 심판을 할 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보는 죄와 정의와 심판은 다르다고 합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Of sin, because they believe not on me;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16:10)
Of righteousness, because I go to my Father, and ye see me no more;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11)
Of judgment, because the prince of this world is judged.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12)
I have yet many things to say unto you, but ye cannot bear them now.
사람들의 죄는 예수(성령)를 믿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합니다.(9절)
또한 사람들이 의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도 예수(성령)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달리말하자면 성령을 볼 수 없다면(깨어나지 않으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말이지요.(10절)
그리고 11절에 세상임금이 심판받았다고 한 것은 육신이 심판받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물질세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므로 심판받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육신이 심판받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9절부터 11절까지는 성령의 중요성에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울러 1절에 예수께서 하신다는 말씀이 성령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성령에 대해 알고 있어야 실족치 않게 된다는 말이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멸시를 당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에 대한 것 외에도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지만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지금은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12절)
그렇지만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이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지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Howbeit when he, the Spirit of truth, is come, he will guide you into all truth: for he shall not speak of himself; but whatsoever he shall hear, that shall he speak: and he will shew you things to come.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4)
He shall glorify me: for he shall receive of mine, and shall shew it unto you.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16:15)
All things that the Father hath are mine: therefore said I, that he shall take of mine, and shall shew it unto you.
그런데 13절에 아주 중요한 대목이 보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자의로 말하지 않는 부분은 되짚어 봐야합니다.
이 내용은 성령자체는 말하지 않는다는(he shall not speak of himself) 뜻으로 반드시 육신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무엇이든지 듣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이 육신을 통해서만 듣고 보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4절에 그가 예수님 것을 받았기 때문에(for he shall receive of mine) 예수를 영광되게 할 거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예수님 것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말로서 하나님과 하나 된 성령이 많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신 겁니다.
그래서 15절에 아버지께 있는 것은 모두 예수님의 것이라 했던 거지요.
이런 말씀에 이어 예수께서는 육신과 영혼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요16:16)
A little while, and ye sha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e shall see me, because I go to the Father.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요16:17)
Then said some of his disciples among themselves, What is this that he saith unto us, A little while, and ye sha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e shall see me: and, Because I go to the Father?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요16:18)
They said therefore, What is this that he saith, A little while? we cannot tell what he saith.
16절은 해석에 문제가 있습니다.
뒷부분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 이유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는(because I go to the Father) 말이 빠져있지요.
이것이 빠져버리면 해석자체가 이상하게 됩니다.
앞부분의 조금 있으면 예수를 못 본다는 것은 육신을 버리고 간다는 말이며 뒷부분에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 가서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이 빠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물론 17절에 같은 내용이 나오긴 합니다만 16절 단독으로 해석하게 되면 제대로 된 뜻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나 홀로목사의 해석과는 관계없이 예수께 직접 말씀을 전달받은 제자들조차 뜻을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17,18절)
이렇게 제자들이 혼란스러워하자 예수께서는 비유로서 설명해줍니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요16:19)
Now Jesus knew that they were desirous to ask him, and said unto them, Do ye enquire among yourselves of that I said, A little while, and ye sha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e shall see me?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at ye shall weep and lament, but the world shall rejoice: and ye shall be sorrowful, but your sorrow shall be turned into joy.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16:21)
A woman when she is in travail hath sorrow, because her hour is come: but as soon as she is delivered of the child, she remembereth no more the anguish, for joy that a man is born into the world.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And ye now therefore have sorrow: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r heart shall rejoice, and your joy no man taketh from you.
제자들의 궁금한 점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해 하더라도 세상은 오히려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제자들은 예수의 돌아가심을 근심하겠지만 도리어 그 근심이 제자들에게 기쁨이 될 거라고 했는데(19.20절) 이 말씀인즉 육신 예수의 죽음에 제자들이 슬퍼하겠지만 내재한 성령이 깨어나는 것은 제자들에게 기쁨이 될 거라는 뜻입니다.
또 이르시기를 여자가 해산할 때 근심을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고통조차 기억치 않는다 한 것도(21절)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야지요.
아이를 낳기까지 엄청난 고통에 힘들어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기뻐하는 마음에 고
통조차 잊어버리듯이 성령이 깨어나기까지가 힘이 들뿐 깨어나면 기뻐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결국 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슬퍼하는 제자들을 위로하는 말씀으로서 육신은 죽음에 이르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만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돌아온다는(되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예수께서는 22절에서 근심하지 말라시며 제자들이 자신을 다시 볼 것이라 말씀하신 겁니다.
그때(성령이 깨어날 때)가 되면 제자들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은 누구도 뺏어가지 못한다는 거지요.
성령이 제자들의 내면에서 되살아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성령을 드러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And in that day ye shall ask me nothing.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Whatsoever ye shall ask the Father in my name, he will give it you.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Hitherto have ye asked nothing in my name: ask, and ye shall receive, that your joy may be full.
23절에 그날은 성령이 깨어나는 날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육신)께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뒷부분에 무엇이든지 예수님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했는데 이는 앞부분과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예수께 물을 필요조차 없는데 예수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뒷부분은 서두에 말한 그날을 접목시켜 해석해야합니다.
성령이 깨어나는 날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준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예수의 이름이란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24절을 보면 지금까지는 제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Hitherto have ye asked nothing in my name)
그렇지만 지금부터 구하면 받게 되며 기쁨이 충만해진다고 하셨지요.
이 말씀을 상고해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이름 또한 성령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제자들이 그때껏 육신 예수님만 알고 있었을 뿐 성령이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알게 되면 제자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성령이 깨어나게 되고 그로인해 만물을 그가 움직인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구하면 얻게 된다 하신 것이며 기쁨이 충만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보충설명이 이어지는 내용에 나옵니다.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16:25)
These things have I spoken unto you in proverbs: but the time cometh, when I shall no more speak unto you in proverbs, but I shall shew you plainly of the Father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요16:26)
At that day ye shall ask in my name: and I say not unto you, that I will pray the Father for you:
성령에 대한 일을 비사로 말했다고 했지요.
그렇지만 때가 되면 더 이상 비유로 말하지 않고 명백하게 보여주겠다고 합니다.(25절)
그런데 26절을 보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날에 제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구할 것이라 했는데 뒷부분에서 예수께서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액면대로라고 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면 당연히 예수께서 하나님아버지께 구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아니라고 했으니 앞부분에 예수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그날이란 성령이 드러나는 날입니다.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 더 이상 육신예수님이 아닌 성령의 이름으로 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성령이 드러나게 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16:27)
For the Father himself loveth you, because ye have loved me, and have believed that I came out from God.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16:28)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am come into the world: again, I leave the world, and go to the Father.
제자들이 성령을 깨닫게 되는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로서 온줄 믿었다고 했으니 하나님처럼 믿었다는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사랑했다고 한 겁니다.(27절)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역시 아버지께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니(28절) 하나님과 하나이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했습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요16:29)
His disciples said unto him, Lo, now speakest thou plainly, and speakest no proverb.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요16:30)
Now are we sure that thou knowest all things, and needest not that any man should ask thee: by this we believe that thou camest forth from God.
그동안은 예수께서 비유와 은유로서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명백하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29절)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담지 않은 그릇이 없음으로 모든 것을 안다고 한 것이며 사람의 질문조차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한 거지요.
사람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은 성령은 육신과는 별개의 존재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요16:31)
Jesus answered them, Do ye now believe?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Behold, the hour cometh, yea, is now come, that ye shall be scattered, every man to his own, and shall leave me alone: and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These things I have spoken unto you, that in me ye might have peace. In the world ye shall have tribulation: but be of good cheer; I have overcome the world.
31절 말씀을 보건데 제자들이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야 성령에 대해 제대로 된 믿음이 생겼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32절은 조금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이 지금 왔다고 했고(the hour cometh, yea, is now come) 제자들이 흩어져 모든
이들이 자기 자신에게로 간다했습니다.(ye shall be scattered, every man to his own)
한글 성경은 제 곳으로 흩어진다 했지만 이 내용은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가리키는 겁
니다.
뒷부분에 예수님을 혼자 버려둔다는 말 때문에 장소로 해석했겠지만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제각각 흩어지고 홀로 있지만 하나님과 같이 있다는 말이며 모두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3절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이유가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이라 하
신거지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으니 제자들 역시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는 말이며 성령을 깨달아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이치를 알게 되면 세상에서 환란에 처해지더라도 담대할 수 있으며 세상
을 이겼노라 선포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신 겁니다.
진정 성령이 자신의 내면에서 되살아났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지요.
성령이 드러난다는 것은 육신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기에 세상을 이겼다고 표현하
는 겁니다.
누구라도 성령을 깨닫고 나면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6장을 모두 마쳤는데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과연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되살아난 것 같은가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이겼노라 말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들 생각해보시기 바라
며 17장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