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난번 사저가 언니와 뇌성마비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했지?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해.
다녀간지 얼마되지도 않은데 불구하고 그들이 부리나케 나에게 온 이유는 내가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어.
이제는 중국의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더이상 버틸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일을 벌린것이 그다지 신통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도 했고 지금의 주변 상황이 나를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여기기도 했기 때문인데 사실을 보게 되면 그 모든것이 내 생각이 만들어낸 허구라 할수있어.
하지만 그같은 내 말이 그저 늘 하던 푸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긴 그들이 밤길을 마다않고 내게 온거지.
내가 가면 안되는 어떤 일이라도 있는것 마냥 나에게 온것인데 그들의 관심에 감사를 해도 시원치 않을 내 반응은 고마움을 느끼기는 커녕 차갑기까지 했거든.
솔직히 얼마전 네 삼촌으로부터 호주로 올것을 제안 받기도 했기에 이참에 모든것을 정리하고 호주로 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
이것은 여러가지의 생각이 나에게 항상 공존하고 있었다는것에 대한 증거이기도한데 언제든지 그같은 일을 사실화 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거지.
그러하기에 이번 같은 경우 때마침 핑계거리가 생겼고 얼씨구나 좋다 하고 그 생각 쪽으로 내 행동을 몰아가려고 한것이 아니겠어?
하지만 아직 그러한 행동을 결정짓기까지는 몇단계를 더 거쳐야만 한다는것을 우리들 모두는 알아.
사저도 알고 뇌성마비 아이도 알고 있으며 나까지도 아는거야.
정해진바는 아무것도 없으며 나처럼 자유의지를 상실하다시피한 사람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아는지라 그처럼 부리나케 달려온거지.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말을 그다지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 가는것도 신의 뜻이며 이 자리에 머무는것 조차도 신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어.
이같은 말에 대한 설명을 지난번 한것 같은데 기억나지?
그런데 이번에 뇌성마비 아이가 다시 그일을 상기시켜 주었어.
지나간 과거의 어떠한 일들도 완벽하며 그일은 당연히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었음을 확인하게 된거야.
앞선 시간 내가 말한것처럼 스님이 나에게 해주는 충고를 나 또한 아이에게 하고 있었는데 아이와의 대화를 나누면서 그 옛날 스님과의 대화가 생각이 나게 된거지.
그 당시는 기분이 좋지 않았던 스님의 충고 덕분에 아이와의 대화에서 좀더 많은 이해심을 발휘할수 있었어.
다만 내가 앞서 스님과 약간 다를수 있었던것은 그러한 경험을 했기에 그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었던거야.
그 아이의 입장을 내가 충분히 이해를 할수 있었고 그기에 따른 문제점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이같은 문제점을 설명 할수 있었지 않겠어?
이것이 바로 경험이 가져다주는 인식의 확장인데 그 당시는 참기 힘들었던 일이 가져다준 신의 축복이었어.
매순간이 축복일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 한 셈이야.
도대체 어떠한 대화가 오갔기에 그렇게나 오래된 지난일을 되살리게 되었냐고?
그것은 말이야.
그 아이가 나를 대하는 행동이나 말이 무척이나 내 귀를 거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어.
나를 부르는 호칭도 사형이라고 바뀌었고 내가 말을 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하며 심지어 내가 말을 하는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가로채기 일쑤였거든.
물론 아직까지 아이이다 보니 충분히 그렇겠거니 하고는 있지만 아이의 몸을 빌어 나타나신 부처님들이 하는 짓이라 생각하면 그렇게만도 여기기 어려워.
너무 심하게 대하면 또 다시 지난번처럼 아이가 삐칠까봐 눈치를 봐가며 대화를 해야 하는거야.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된거지.
내 행동이 아이만큼이나 심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눈에는 내가 아이를 보는것 이상으로 힘들어 했을수도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이번에 아이가 나에게 와서 그같은 내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게 만들어 준거야.
이같은 일은 동수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였는데 지금도 가끔씩 나에게 충고성 메일을 보내주는 이들이 바로 그러하다 할수있어.
이 모두가 과거에 내가 했음직한 일을 그들을 통해 되돌려 받는거지.
지금 내가 말을 아주 쉽게 표현해서 그다지 어렵게 여겨지지 않고 있지만 이같은 일을 직접 당해보면 그다지 쉽게만 여겨질 상황이 아니거든.
너도 생각을 해보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인데 중간에 말을 가로채서 할 경우 얼마나 황당하겠어?
마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마이크를 옆사람이 뺏어간 꼴인데 심하게 표현하자면 모욕감을 느낄 정도인거야.
그저 아이가 하는 짓이겠거니 하면 될것인데 그러기에는 그 아이의 말이 아이로 여길수 없도록 만들고 있어.
자신을 소시주(불자를 부르는 호칭)라고 불러주길 바라고 다른 사람들을 부를때도 사저니 사형이니 하거든.
부처님이라고 불러주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사람들의 반발이 예상되니 그렇게는 차마 못하고 그나마 동등한 수행자로 취급받기를 바라고 있는거지.
이러다보니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인내심을 시험받는 일이 되고 있는거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아이가 이런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어.
자신을 인정하는척만 해주고 있을뿐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거나 자신 내면의 부처를 향해 존경심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꾸만 인정을 받고자 하는거지.
그런데 아들아!
말을 하다보니 생각이 나서 말인데 왜 그 아이는 나에게 그렇게나 오고 싶어할까?
이것은 말이야.
중국의 동수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싫다는데 왜 그렇게나 오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가 이 말이거든.
언젠가 나를 고발 하겟다던 중국동수는 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짓을 한다고 말을 하더구나.
나보고 내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보살펴주면 내가 부처가 될거라는 말도 하였어.
한마디로 자신이 개떡같이 놀더라도 내가 찰떡같이 이해해 달라는 말이었던거야.
그래서 나는 찰떡을 치는 떡매를 휘두르듯 그를 쫒아버린거지.
지금도 내 주변에서는 이러한 일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들 모두의 한결같은 말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다는거야.
나에게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데 참으로 좋은 스승들이라 할수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의도대로 무조건 이해하지는 않고 있어.
내가 이해를 할수 있는 만큼만의 이해를 해주고 있는거지.
도저히 참지 못할때는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려버리고 있는데 그것도 사람을 봐가면서 하는거야.
한주먹꺼리도 되지 않는다 싶으면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아.
그래도 나에게 한방을 얻어 먹은 이들은 맷집이 좋은편에 속한다 할수 있는데 중국동수의 경우 4번만에 나가 떨어졌으니 대단한 맷집이라 불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뇌성마비 아이는 그야말로 짱이라 할수 있거든.
내 속을 훤히 들여다 봐 가면서 나를 훈련 시키고 있는거지.
그날도 내가 오지 말라는데 불구하고 그들은 마냥 나에게 대쉬를 했고 나의 에고를 시험하는 거룩한 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거야.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나에게 온것은 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문제 때문이기도 했는데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어려움을 겪고 잇었어.
지금은 이미 그들이 살고 있는 일대에 소문이 퍼져서 날이 갈수록 손님들이 밀려들고 있는데 한마디로 번창일로에 있거든.
하지만 그러한 외형과는 달리 문제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처음 아이가 사저언니의 집에서 지금의 일을 시작할 무렵 가족들로부터 동의를 얻지 않고 일을 햇기에 불협화음이 생긴거야.
큰 아들이 때마침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아이와 다툼이 일어난거지.
이미 내면의 부처님이 시키는 대로 법상을 모셨으면 집이 아니라 절간이라는 주장을 하는 아이와 내집에서 내가 왜 마음대로 못하는가 하는 의견이 충돌을 일으킨 것인데 내가 봤을때는 둘다 일리가 있게 보이더구나.
큰 아들이라는 사람이 술 담배를 함부로 먹고 피우지를 않나 손님들이 오는데도 불상을 모신 방을 들락거리기 일쑤이니 아이를 통해 나타나신 부처님들이 싫어할수밖에 없었던거야.
하지만 아무리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그러한 일을 했다는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는데 아이는 아이대로의 주장이 있었어.
처음 내면의 부처님이 일을 시작할때 사저의 언니가 동의를 하였으니 아들을 설득하지 못한 잘못은 명백하게 엄마에게 있다는거야.
이렇게 두사람의 의견이 대립을 하는 통에 본의 아니게 내가 중재를 나서야 했는데 설법 아닌 설법을 하게 된거지.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된데는 나역시 책임이 있다 할수 있는데 내가 한말이 있었거든.
아이를 도와서 일을 하더라도 관음명상만큼은 틀림없이 할것을 말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를 없수이 보는 뉘앙스를 풍긴거였어.
한마디로 아이의 내면 부처님보다 스승님이 더욱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질수 있는 말을 한거야.
비록 내가 직접적인 말을 한것은 아니었지만 다분히 그렇게 느낄수 있는 말을 했으니 아이를 대할때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내말을 적용시키게 된거지.
그러한 사실을 지혜안을 연 아이가 모를리가 없었고 나에게 불평을 그런식으로 하게 된것인데 결국 내가 쏜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셈이 아니겠어?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내가 나서지 않을 도리가 없었어.
"왜 아이를 그렇게 대하십니까?
만약 아이가 그러한 일을 하는것이 싫다면 나처럼 아이를 내쫒으세요.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지금 하는 일이 좋다고 한다면 그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 합니다.
어찌되었건 그 아이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것이 사실인데 지금 하는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지난번 내가 말한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맡은바 일을 완벽하게 해낸후 수행자로서의 의무도 게일리 하지 말라는 말이었지 아이를 통해 나타나신 부처님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었어요"
아이의 일을 도와주면서 받는 월급이 적지 않았고 영적으로도 아이의 몸을 통해 나타나신 부처님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지라 불평을 말할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처형이 그렇게 말을 한것은 순전히 지난번 아이와 나사이에서 일어난 일 때문인것 같았던거야.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높낮이를 생각했던거지.
그러다보니 자신이 머리로 생각한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하였어.
"그렇지만 그 아이를 통해서 나타나는 부처님들이 너무나 많아요.
웬 부처님들이 그렇게나 많고 보살님들도 그렇게나 많은지 도무지 헷갈린다는 말이예요.
그저 부처님 하나면 족할것을 이 부처, 저 부처, 나타나서는 사람을 귀찮게 만들고 자꾸만 참회를 하라고 한단 말이예요.
내가 뭔 잘못이 그렇게나 많아서 심심하면 참회를 하라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예요"
아이를 통해 나타나시는 부처님들이 많았던것이 사실이기도 하였고 보살들은 물론 왕모냥냥(옥황상제 부인)까지 등장하고 있었으니 그런말이 나올만도 햇던거야.
그래서 내가 약간의 설명을 하게 되었는데 부처가 뭐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하려니 무척이나 힘이 들어야 했어.
아들아!
우리들이 몇년간을 데리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말이 나온다고 한다면 일반 사람들이야 말을 해서 뭘하겠어?
천백억 화신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동일체라는 개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야.
내가 사저의 언니와 몇년 동안을 지내는 동안 저질러 놓은 일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던거지.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인식하는 정도를 말한다 생각하며 아무런 가식없이 느낀바대로를 말하여 왔고 그를 나와 비교해서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겨 왔는데 그분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말을 인식하고 있었어.
참으로 답답해서 가슴을 칠 노릇이었지만 그 또한 완벽의 범주안에 있는것은 분명하거든.
오늘 너와의 대화에서 그분의 문제를 보면서 우리들의 문제를 볼수 있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안배를 하신거야.
아들아!
이제 왜 내가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자신들의 인식만큼만을 보게 된다고 했는지 알겠지?
글쎄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처형되신다는 분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거지요?
그리고 처형에게 무슨말을 했길래 그가 그렇게 인식을 했다는 건지요?
구체적인 설명없이는 이해하기가 어려운것 같으니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가 그렇게나 공손하게 청을 하니 당연히 대답을 해야겠지?
그렇지만 아들아!
내가 대답을 하기전에 한가지 말을 해야 할것 같거든.
언젠가 내가 말을 했던것 같은데 분별심을 여의고 나면 분별심을 가지게 된다는 말 말이야.
기억나지?
바로 그와같은 개념을 지금부터 우리들의 대화에 삽입을 시켜야 해.
근본적으로 우리들은 부처나 신이 아닐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 세상을 살기 위해 모른척을 하고 잇다고 했지?
이것이 바로 처형과의 대화에서 확인할수가 있었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서 우리 모두가 동일체라고 해도 처형이 사실화 시킬수는 없었던거지.
그저 처형은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만을 아이에게도 주장하고 우리들에게도 주장하려고만 했거든.
이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는데 나와 상대하는 누구라도 그러했던거야.
오히려 어떤 경우는 나에게 충고들을 하려 드는데 자신들의 우물에 나를 가두고자 해.
이것이 바로 내가 상대방은 나의 거울이라는 말의 진정한 뜻이며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나에게서 그들의 인식정도만큼을 보게 된다는 이유인거지.
바로 처형과 똑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어.
내가 우리들의 대화에서도 많이 설명을 했지?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고 말이야.
그처럼 처형이나 동수들이 아이나 나에게 와서 기댈 필요가 없다는 말인데 결코 내가 먼저 그들을 청하거나 와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그래서 내가 처형도 쫒아버렸고 동수들도 쫒아버린거야.
자신들이 신이고 부처이니 나를 귀찮게 하지말고 독립들을 하라는 말이거든.
처형에게 내가 해준 말이 바로 그거였는데 당신이 만약 내말처럼 천백억 화신의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면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야 하며 그기에 맞는 신구의를 갖춰야 하는데 그기에 미달되기 때문에 아이를 통해 나타나신 부처님들이 참회를 하라고 하는거다 했던거지.
만약 그같은 아이의 말이 불만이거든 아이를 과감하게 내 쫒으라고 했는데 그말에는 묵묵부답이었어.
한마디로 얄팍한 계산에 따라 아이를 데리고 잇음으로서 생기는 물질적인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던거야.
이러한것이 우리들의 현실인데 나에게 혼이 나야했던 모든 이들이 이러했거든.
나는 지금도 누구든지 나에게 오는 사람들은 앞에서 보여준것과 마찬가지로 대해 줄것이 틀림없으며 오히려 가면 갈수록 더 심하게 욕을 하거나 화를 낼지도 몰라.
하지만 그같은 일을 기뻐고 즐겁게 할것이 틀림없는데 누군가 이러한 나를 보고 마왕이라 한다해도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고자 해.
그들의 썩어빠진 판단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거라는거지.
아들아!
말을 하다보니 정도 이상으로 흥분하고 있는것 같으니 잠시 호흡을 고르기로 하자꾸나.
사실 오늘 얘기의 주제는 아이의 몸을 통해 나타나신 부처님께서 왜 수행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신것읕 말하려 했는데 엉뚱하게도 말이 빗나가게 되었어.
그러나 이같은 오늘의 대화도 분명하게 해야만했던 필연성이 있었을거라 생각해.
누군가의 돌같이 단단한 머리가 약간은 금이 갈수 있었을수도 있거든.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는 단단한 머리가 완전히 부서질수 있는 대화를 신께서 허락하실것을 바라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