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배가번드 2023. 10. 25.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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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인가를 절실하게 깨닫는 요즘입니다.

며칠 전 철근일하는 사람과 언쟁을 하게 되었지요.

전기일의 특성상 항시 철근이 작업을 끝내야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기 작업은 항상 늦게 마무리가 됩니다.

철근공이 3시에 퇴근하면 전기는 그보다 늦은 시간에 퇴근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전기 작업자들은 철근 공들이 일하는 도중에 올라가 철근작업이 완료된 부분부터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공들의 행동들이 거슬리는지 가끔씩 철근 공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자신들의 작업이 끝나고 난후 전기 작업을 하라는 거지요.

만약 이 사람들 말대로 하게 되면 전기 작업자들은 제시간에 퇴근할 수가 없게 되며 항상 잔업을 해야 합니다.

이런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신경에 거슬린다고 작업을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나도 소리를 치게 된 겁니다.

좋게 말해도 될 것을 반말로 소리를 치기에 화가 났으며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기에 내 딴에는 조심해서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철근작업이 완료된 부분에서 작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리를 치기에 맞대응을 하게 되었지요.

그냥 조용하게 말해도 될 일을 소리를 친다는 것은 전기 작업자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며 게다가 반말을 함부로 지껄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나는 일인 겁니다.

특정한 지역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단이라는 점과 모두가 민노총회원들이라는 점 또한 내게는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는데 교포들로 구성된 전기 작업자들에게 대한 그들의 편견 된 시각이 더욱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게 되었고 다행히 내게 소리쳤던 사람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바람에 싸움이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멱살잡이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요.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러한 내행동에 대해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를 이십 년 넘게 닦았다는 사람이 상대방의 불의한 점을 참지 못하고 맞대응한 것을 나무랄 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 말이 틀리지도 않습니다.

인내하라는 말을 따르자면 어떤 경우도 참아야한다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도를 닦는 다는 것은 나무토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만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또한 인과법을 안다면 이렇게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이번일과 같이 불의를 당하고도 내가 참아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큰 화를 입게 되어있습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며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서는 좋은 일을 한 겁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지요.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요2:14)

And found in the temple those that sold oxen and sheep and doves, and the changers of money sitting: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요2:15)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2:16)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2:17)

And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it was written, The zeal of thine house hath eaten me up.

 

이 말씀은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이 물질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기록된 내용입니다.

영적인 일을 밥벌이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이런 일을 행하게 되면 본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돌아감으로 예수께서 이렇듯 화를 낸 겁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영생 얻기를 원한다면 성전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을 것이며 물질적인 일에 정도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17절에서 당신의 집에 대한 열정이 나를 삼킨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내용은 시편을 인용한 겁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69:9)

For the zeal of thine house hath eaten me up; and the reproaches of them that reproached thee are fallen upon me.

 

영적인 길을 걸어감에 있어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책망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靈)과 육(肉)은 정반대의 길이라 이럴 수밖에 없으며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생을 향해 걸어감에 있어 불의한 일을 보고 참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보면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동은 바로 이러한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하거나 말았거나 내버려두면 그만이겠지만 상을 뒤엎어 버림으로 인해 그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곳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나를 삼켰다고 한부분입니다.(the zeal of thine house hath eaten me up)

당신 집은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니 성전이 다윗을 삼켰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훼방하는 그 훼방이 다윗에게 미치게 된 겁니다.(reproached thee are fallen upon me)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시편을 인용한 것이긴 하지만 성령이 깨어나 하나님과 하나 된다고 해서 무조건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참지 않으며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했다 여겨지면 욕을 얻어먹어도 참으며 맞대응하지 않게 됩니다.

언젠가 이런 일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있지요.

누군가 술에 취해 내차 백미러를 깨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때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붙들고 변상을 시키려했더니 돈이 없다는 바람에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릴 때 술에 취해 남의 차 유리를 깨었던 기억이 일어나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동시에 손에 힘이 풀리며 그 사람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누군가와 다툼이 벌어지거나 언쟁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과거의 잘못들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내재하신 성령께서 내가 사는 동안 저질러놓은 일들을 모두 떠올리게 만들기에 아무리 감추려 해도 소용이 없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될 수 있으면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또한 가능한 범위에서는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이타행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어놓은 것들은 언젠가 머리를 내밀기 마련이라는 점을 몸소 경험했기에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의함을 보고 넘어가지는 않으며 싸움도 불사(不辭)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소용이 없듯이 수행자가 정의롭지 못하면 무슨 쓸데가 있겠습니까.

영적인 길을 걷기시작해서 지금까지 제대로 싸워보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수행자는 모르겠으나 나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