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애통해하는 이는 복이 있다.

배가번드 2023. 10. 28.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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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떨 때는 피를 토하고 싶을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도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억의 깊은 곳에 들어가 보면 분명히 내가 저지른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언젠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가 내게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준 적이 있습니다.

나이로 보나 직장경험으로 보나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에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부당한 일을 나에게 요구하는 일이 왕왕 있더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면 무척 반가워하며 심지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을 당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과의 관계가 전생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 사람이 전생에 나를 위해 죽었던 일이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쟁에 나섰을 때 나와 함께 참전해서 죽어야만 했던 장수였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된 겁니다.

이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러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우리가 한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살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윤회에 관련된 내용이 있지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10:35)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8)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평화의 상징이며 빛을 세상에 뿌리는 분이십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인 예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은 영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세상의 혈연관계를 절단시키고 물질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검을 주러왔다 말씀하셨음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34절)

우리나라 속담에 시어머니 심술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이 생겨났는가 하면 우리가 세상을 한번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만약 누군가 무서운 시어머니 짓을 했다고 쳤을 때 다음세상에서는 호된 시어머니를 만나 자신이 한 짓만큼 시집살이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상 이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야만 하고 이번에는 내가 시어머니 역할을 하고 다음에는 네가 아버지 역할을 하는 등의 다양한 역할을 바꾸어서 하게 됩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시어머니가 괜히 나를 시집살이 시킨다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시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며 과거 전생에 내가 심어놓은 것을 되돌려주는 역할을 맡은 것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못된 며느리가 들어온 것도 말썽장이 아들이 태어난 것도 모두 내가 심어놓은 것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원수들이 자기 집 식구가 될 거라는 표현을 한거지요.

그러나 이러한 전생에 대한 일들은 모두가 부질없으며 성령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일시에 정리가 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37절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혈연관계를 넘어서 있으며 물질세상과는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부모형제로 이루어진 가족관계는 역할을 바꾸어서 하는 세상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성령이 되살아날 수 있음을 설하신 거지요.

무릇 성령을 깨달으려면(되살아나려면) 자신이 저질러놓은 모든 일들은 스스로 책임져야하기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성령)를 따라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38절)

본인에게 주어진 삶의 짐들을 누군가에게 맡기려 해서는 안 되며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것은 세상 죄를 짊어지는 어린양이 되겠다는 말과 같은 것인데 자신의 짐도 지지 못해 남에게 신세를 져야한다면 스스로 못났음을 선전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을 때 돌부리를 걷어차기보다 자신이 발을 헛디딘 것을 탓해야 하는 겁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매순간이 내가 뿌려놓은 것들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래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기보다 세상 탓을 하고 남의 탓을 하며 심지어 부모 탓에다 신을 탓하는 사람들까지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성령을 깨닫지 못하기에 예수께서는 육신을 죽여야 성령이 깨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지요.

이 말은 멀쩡한 목숨을 스스로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육적인 자아(自我)를 부정하고 영혼인 진아(眞我)를 되살리라는 말입니다.(39절)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라고 한 것은 예수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뜻하는 것으로 성령을 위해 목숨을 잃는 자는 성령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명을 구하려 하는 이는 성령을 잃는다고 했으니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할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자신의 몸을 중시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소중해도 육신의 생명은 제한적인 것이며 정해진 역할이 끝나면 버려두고 떠나야하지요.

무엇보다도 육신의 주인이 성령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윤회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으며 또다시 공부를 하기위해 이 세상에 와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지금 당면한 상황을 달리 보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호되게 시킨다 할지라도 맞대응하거나 힘들어 하기보다 내전생빚을 갚아주려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누군가 정도이상으로 나를 힘들게 만들 때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빚을 진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면 그렇게 힘들게 여겨지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앞서 마태복음 10장에서 성령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다 하신 것과 같이 예문으로 올린 5장 말씀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성령 안에서 가난한 이는(the poor in spirit) 축복받은 것이며 하나님 왕국이 이들의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영적인 일을 우선시여기고 물질적인 일을 등한시 여기다보니 가난해줄 수밖에 없는지라 이렇게 기록해놓은 겁니다.

마찬가지로 억울한 일을 당해 애통해하는 이들은 전생에 빚을 갚은 것이므로 앞으로는 위로받을 일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당면한 현실이 그다지 어렵게 여겨지지 않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즐겁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알아야할 것은 애통하고 억울한 일을 주는 쪽이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내가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이 전생에 받을 빚이 있어서라거나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받아야할 빚이 생기는 것이고 피해자는 빚을 갚는 것이니 가해자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만약 가해자가 이런 말을 함부로 한다면 죄에 죄를 더하게 됨으로 본인을 곤란지경에 빠트리게 됨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두말이 필요 없으며 두고 보면 내말이 어떤 뜻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본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