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물질보다 영적인 일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영생을 바라노라 말은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물질을 추구하기 마련이지요.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구도자라 해도 물질적 어려움에 노출되면 누구라도 세상의 권력에 무릎을 꿇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긴바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26:41)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26:42)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마26:43)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마26:44)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마26:45)
우리의 영혼은 항상 영생을 원하고 있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눈이 피곤한 탓이라 한 것은 지혜가 열리지 않아서라는 뜻이지요.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면(세 번의 기회가 주어짐) 성령이 잠들어 버린다고 합니다.
육신에(물질세상) 굴복하게 되면 인자가 될 기회를 박탈당한다 했으니(죄인의 손에 팔림) 영생을 목표로 가진 이들은 이 말씀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도행전을 통해 이러한 일을 수차례 확인한바 있었던 만큼 오늘 또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행13:7)
Which was with the deputy of the country, Sergius Paulus, a prudent man; who called for Barnabas and Saul, and desired to hear the word of God.
서기오의 뜻은 “그물”이며 바울의 뜻은 “작은 자, 작음”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해석해보면 그물과 같은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극히 낮추는 자에게 성령(바나바와 사울=인자)이 임한다는 말이 됩니다.
스스로를 낮춘다는 것은 진동력이 조밀한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으며 빛이 된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조밀하게 짜인 그물망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운 작은 분자의 상태가 되면 빠져나갈 수 있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총독이라(the deputy of the country) 한 것은 아직 왕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직은 육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신중한 사람은(a prudent man) 인자의 가르침을 청하며(called for Barnabas and Saul) 이들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처럼 여긴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여기에 대한 부연설명이 나옵니다.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행13:8)
But Elymas the sorcerer (for so is his name by interpretation) withstood them, seeking to turn away the deputy from the faith.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13:9)
엘루마를 한글성경에는 박수무당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정확한 뜻은 “점을 치는 자, 마법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 기적과 이적을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기적과 이적을 바라는 마음 저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물질과 육신적인 것들임을 알 수가 있지요.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 외의 것들을 기적을 통해서라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수가 바나바와 사울에 대적한다 말하고 있으며 총독을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했지요.(turn away the deputy from the faith)
이러한 일에 대해 사울은 성령의 눈으로 꿰뚫어 보고 있으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9절)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행13:10)
And said, O full of all subtilty and all mischief, thou child of the devil, thou enemy of all righteousness, wilt thou not cease to pervert the right ways of the Lord?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행13:11)
And now, behold, the hand of the Lord is upon thee, and thou shalt be blind, not seeing the sun for a season. And immediately there fell on him a mist and a darkness; and he went about seeking some to lead him by the hand.
기적과 이적을 바라는 마음을 마귀의 자식에(thou child of the devil) 비유했으며 정의로움의 원수라고(thou enemy of all righteousness)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바른길을 왜곡되게 만든다고 합니다.(10절)
그만큼 기적과 이적을 바라는 마음은 영생을 향한 길에 치명적이라는 거지요.
이 같은 표현이 조금은 심한 면이 없지 않지만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러한 시험을 이겨내야만 하기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11절은 보면 마법사가 소경이 된다 했는데(thou shalt be blind) 이는 빛이신 성령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not seeing the sun for a season)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들을 이롭게 하는 이적과 기적을 바라서는 성령을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음가짐으로는 성령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이를 알아볼 수가 없으며 인도자를 찾아 헤매게 된다는 거지요.(he went about seeking some to lead him by the hand)
이러한 바울의 말에 총독이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행13:12)Then the deputy, when he saw what was done, believed, being astonished at the doctrine of the Lord.
앞서 말한 대로 총독은 성령이 드러나지 못한 구도자를 가리키는 겁니다.
우리가 빛이신 성령을 깨닫지 못했음을 바울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아직도 성령을 드러내거나 볼 수 없다면 물질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리를(the doctrine of the Lord) 육신적인 인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기에 기이하게 여겼다 말해놓았습니다.
액면대로 보자면 엘루마가 장님이 된 것을 보고난 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는 구도자의 마음을 꼬집고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본 내용은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뜻: 구리)에서 전도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사울(뜻: 하나님께 구했다)의 이름이 바울(뜻: 작은 자, 작은)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은 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구리의 수준에 머물고 있던 구도자를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 정금으로 만든 사울이 바울로 바뀐 것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낮추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던 자리에서 자신을 가장 작은 자로 만들고 나면 주어지는 모든 것이 넘치도록 과분함을 알게 된다는 거지요.
구한다는 것은 모자란다는 뜻이며 스스로가 작아지면 큰 것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니 이비밀이 실로 큽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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