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마태복음2.

배가번드 2016. 2. 1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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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holy)한 나 홀로 목사입니다.

지난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마태복음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 후반부를 보면 예수의 탄생신비를 기록해 놓았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시험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지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누군가는 이 구절을 보면서 성경을 불신하게 될 것이며 누군가는 더욱 심하게 예수라는 인물에 집착하여 광신도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을 믿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는 멀어질 것이고 예수라는 인물에 집착하여 광신도가 되어도 영생과는 거리가 멀게 되지요.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가 있는가 생각한다면 성경을 믿지 않게 될 것이며 이 같은 사실을 액면그대로 믿게 되면 예수님은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이라 여길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또한 예수의 제자가 자신의 스승을 드높이기 위해 구약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말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Therefore the Lord himself shall give you a sign; Behold, a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

 

 

 

이 내용은 마태복음 1장 23절에 있는 내용인 동시에 구약 이사야서 7장 14절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가 구약곳곳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을 즐거이 사용하고 있지만 액면그대로를 보면 그들이 말하는 내용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사야서에 나온 이 구절은 B. C 700년경 유다의 아하스 왕의 통치하에서 선지자[豫言者, prophet] 이사야가 예언을 한 내용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마다한 유다(하나님 믿는 사람)가 어떻게 망하게 되는가를 비유해 놓은 것이지요.

잠시 본문을 볼까요?

 

 

혹이 다윗 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

And it was told the house of David, saying, Syria is confederate with Ephraim. And his heart was moved, and the heart of his people, as the trees of the wood are moved with the wind(사7:2)

 

 

이 구절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누군가 다윗 집에 고하였다고 했는데 다윗이 누굽니까?

하나님을 믿는 백성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마음에 외적이(우상숭배. 이방신) 쳐들어오자 순식간에 믿음이 흔들렸다는 것을 말해놓은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일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상태를 묘사해놓은 기가 막히게 지혜로운 가르침이기도 하며 예언서 이기도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나중에 아수르에게 굴욕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하나님의 메신저인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이스라엘백성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영적인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직도 실감이 가지 않는다면 다음구절을 보도록 하지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Ask thee a sign of the LORD thy God; ask it either in the depth, or in the height above. But Ahaz said, I will not ask, neither will I tempt the LORD. (사7:11~12)

 

 

아하스가 유다왕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우리들이 왕이기에 우리마음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이 내용을 보면 확실하게 증명이 되는 것이 있는데 이사야는 이 시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의 영적스승이었다는 겁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나 하는 것이 다음구절에 나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And he said, Hear ye now, O house of David; [Is it] a small thing for you to weary men, but will ye weary my God also?(사7:13)

 

 

다윗의 집이여 한 것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이 맞으며 이것은 분명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괴롭게 했다는 말은 우리 육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사람 안에서 깊이 잠들어계신 성령이신 하나님까지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비유해 놓은 것이지요.

이것은 분명 특정한 어느 계층의 사람들에게 한말이 아니라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편재하시는 하나님은 사람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 분명합니다.

어떤가요?

이사야는 참으로 지혜로운 이스라엘의 스승이 아닙니까?

이렇게 사람들의 상태를 말해놓은 이사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방법까지도 말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사야7장 14절에 나오는 내용인 것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여 낳는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이 구절을 많은 기독교도들이 예수님은 인간들의 탄생방법과는 전혀 다르게 태어나신분이라 말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세상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모르는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아직까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상태의 영혼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과의 완전한 하나를 이룬 상태의 영혼이기에 그렇게 말해놓은 것이지요.

또한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 안에 성령이 함께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을 보인 것이기도 하며 모든 인간들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그런지 지금부터 살펴보기로 하지요.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져 이 아기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되리라.

Butter and honey shall he eat, that he may know to refuse the evil, and choose the good.For before the child shall know to refuse the evil, and choose the good, the land that thou abhorrest shall be forsaken of both her kings.(사7:15~16)

 

 

아마 영어를 아는 분들이 보면 번역상의 오류를 볼 수가 있을 겁니다.

분명 버터와 꿀이라고 했는데 엉긴 젖과 꿀이라고 적어놓았으니 이상하다 여기겠지요.

이것은 명백히 헬라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할 때 적당한 말을 골라서 적어 놓은 것을 한국성경의 개역개정판을 만들 때 제대로 고쳐 놓은 거라 봐야합니다.

그렇다면 엉긴 젖과 꿀은 무엇을 뜻하느냐고요?

엉긴 젖은 저주를 뜻하고 꿀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오류가 있지요.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이라고 적혀있지만 영어성경에서는 분명her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녀는 아이의 엄마를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지칭한 것인데 이렇게 되어야 번역이 올바르고 분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 홀로 목사의 해석을 볼까요?

 

 

하나님을 믿는 순수한마음(처녀)은 하나님을 잉태하여 그 마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나니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성장함에 따라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되며 하나님의 저주와 축복을 보게 될 것이고 선악을 구분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길의 방해물(미워하는 두 왕)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사야서 7장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되었지요?

구약은 많은 이들이 알듯이 말도 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심오한 내용의 수행지침서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사야의 히브리어 뜻은 "야훼는 구원이시다" 인데 말 그대로 이사야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말해 놓은 것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구약에 대한 해석을 해보기로 하고 시간관계상 마태복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에서 마리아가 동정의 몸으로 예수를 낳았다는 말은 거짓말인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물론 그 말을 액면그대로 믿는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지만 그기에 담긴 의미를 우리가 헤아린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기도 하지요.

오늘 나 홀로 목사의 해석을 듣고 보면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훌륭한 자녀이며 성경속의 많은 선지자들이나 심지어 예수와도 동격이라 여기게 될 것이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진정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이며 예수와도 어깨를 견줄만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신들의 행위가 예수님만큼 훌륭한가를 봐야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재료는 같다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며 자신의 영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님과 일반인들 사이에 벽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영혼의 구원에 대해 말을 하며 예수의 보혈만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예문에 나와 있듯이 자신들 마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하며 자신의 영혼에 대해 완전하게 알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행위와도 밀접한관계가 있습니다.

진정 아는 자는 행동으로 옮기는 자라는 성현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알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안다고 한다면 어떻게 타인들의 종교를 비판하며 남을 향한 심판의 칼날을 세울 수가 있는지요?

아직도 나 홀로 목사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시는 많은 이들이 있군요.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어떤 크리스천한분이 있다고 합시다.

이분은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있으며 영혼의 구원을 믿는 분입니다.

게다가 매일같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술 담배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데 그분생각에는 육신이 하는 일은 영혼과는 무관하다고 여기거든요.

이런 분은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마도 술 담배를 하면 안 된다는 분들은 구원을 받았다면 술 담배를 하지 않을 것이라 할 것이며 영혼의 구원은 육신적인일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괜찮다고 할 겁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일과 영혼과의 일은 무관하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배우자 외에 사람과 동침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위 말하는 바람을 피우는 것 말입니다.

자신의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이 과연 구원받은 사람이 할 짓인가를 말해보라는 것이지요.

어떤가요?

몇몇 분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아마도 몇 사람은 아직도 무관하다 말하겠지만 자신이 당하는 입장에 서면 완전히 돌변을 할 겁니다.

자칭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신자 중에는 배우자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도록 해놓고 자신은 몰래몰래 하지 말아야할 짓을 일삼는 이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교회를 다니는 이상 배우자가 딴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을 찬성한다면서 자신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자신의 영혼을 확실하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남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구원이란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만약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만 듣고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예수가 재림해야 구원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어야하고 예수가 재림을 해야만 구원이 된다고 한다면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거짓이 되고 말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이 말하는 구원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화된 하나님이라 말해놓은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아직 걸음마도 하지 못하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위한 배려이지요.

자신의 습관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람이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며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 여긴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일이 소용이 없는 일이냐고요?

왜 소용이 없습니까?

지금껏 예수를 믿었던 많은 성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가요?

수많은 순교자들이 무덤에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 같지도 않은 교리를 믿고 있다면 당신의 믿음은 방향설정이 잘못되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방향을 틀어야하며 예수님이 하신말씀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겨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충격적인 말을 한마디 할까요?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예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6번째로 흔한 이름입니다.

길을 가다가 “예수”라고 부르면 6명중에 한명은 돌아본다는 거지요.

이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상숭배일수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신 예수가 우리들안에서 부활을 하는 것을 봐야하며 그것이 영생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하지요.

참으로 넘어야할 산은 많으며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먼 여정을 위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로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하지요.

 

 

나 홀로 목사가 기도합니다.

홀로(holo)된 하나님의 영광이 오늘도 세상 곳곳에 충만하오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시어 당신의 완전함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 안에 깃들게 되면 선악의 경계를 명확히 알 것이며 환란의 순간에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온갖 시련이 닥쳐와도 굳건히 서리니 그때서야 영생과가 마음 안에서 피어나리라는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그 본보기로 많은 성자들을 이 세상에 보냈음을 믿사옵니다.

구원에 대한 해석을 각자가 믿고 있는 천국의 크기만큼 허락하신 당신의 능력에 그저 감탄하오며 심판받는 하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영혼들을 부디 불쌍히 여기소서.

하오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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