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에는 약간의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에 성령이 깃들고 있다는 말씀이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여러 종교경전에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된 셈이지요.
특히 성경은 하나님의 품성을 사랑이라 말하고 있으며 성령을 사랑자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의로운 하나님을 사랑의 매를 드는 것으로 묘사하며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우며 그럴 때마다 공의로운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때로 사랑의 매를 들어야한다 주장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공의로움과 사랑을 구분 짓는 잣대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바울로부터 이 같은 일에 대해 배워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5:10)
I have confidence in you through the Lord, that ye will be none otherwise minded: but he that troubleth you shall bear his judgment, whosoever he be.
주를 통하여(through the Lord) 너희 안에(in you) 그 외의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ye will be none otherwise minded)했습니다.
이는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는 것으로 내재하신 성령은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에 대해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너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이는(he that troubleth you) 누구든지(whosoever he be) 그의 심판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bear his judgment) 했지요.
얼핏 보면 이 말씀이 외부의 어떤 이가 우리를 잘못된길로 인도하여 심판받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자신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데 이끌려 내재하신 성령으로부터 멀어지는 선택을 하게 되면 그로인해 인과응보의 법칙아래 놓인다는 말입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왜 이렇게 해석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갈5:11)
And I, brethren, if I yet preach circumcision, why do I yet suffer persecution? then is the offence of the cross ceased.
만약 바울이 할례를 전파했다면 왜 아직도 박해로 고통 받겠느냐(why do I yet suffer persecution?)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인즉, 영적인 길을 선택하였으므로 육신적으로는 고난과 시련을 감내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을 전파하였다면 십자가의 죄가(the offence of the cross) 중단되었을 거라(ceased) 말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은 성령과 하나 되었으므로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양과 같아졌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역시 성령과 하나 되려면 이러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말합니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5:12)
I would they were even cut off which trouble you.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
For, brethren, ye have been called unto liberty; only use not liberty for an occasion to the flesh, but by love serve one another.
너희를 곤란하게 하는 이들을(which trouble you) 끊어버리고자(even cut off )한다고 했습니다.(12절)
지금 이 말씀은 성령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으로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유혹들은 성령에 의해 단절 될 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과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간혹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에 이끌림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자유에 부름을 받은(called unto liberty) 너희가 육신의 기회로(an occasion to the flesh) 자유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며(use not liberty) 오직 사랑으로(by love) 서로에게 봉사하라 했습니다.(serve one another)
즉, 내재하신 성령을 깨달았다고 해서 더 이상 심판받지 않는다 생각하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간혹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죄 사함이 이루어져 영생을 얻었다 생각하고 더 이상 심판받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지요.
바로 이러한 이들을 위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5:14)
For all the law is fulfilled in one word, even in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9:18)
Thou shalt not avenge, nor bear any grudge against the children of thy people, but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I am the LORD.
14절 말씀은 레위기를 인용하였으므로 함께 올렸으며 갈라디아서보다 레위기중심으로 상고(詳考)해보겠습니다.
복수하지 말고(not avenge) 네 백성들의 자녀들에 대하여(the children of thy people) 원한을 품지 말라 했으며(nor bear any grudge against) 네 이웃 사랑하기를(love thy neighbor) 네 자신처럼(as thyself) 하라 했지요.
이 말씀을 보건데 진정 성령을 깨달았다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한 대맞으면 두 대 때리려 하거나 적어도 한 대라도 때려야 속이 시원하다 여기는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을 깨달았다고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But if ye bite and devour one another, take heed that ye be not consumed one of another.
만약 서로 물고 집어삼키면(But if ye bite and devour one another) 서로에게 사로잡히지 않을까(be not consumed one of another) 염려하라고(take heed)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은 인과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는 것은 서로를 인과의 연결고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한사람이 용서를 하게 될 때 비로소 인과로부터 자유로워져 죄와 무관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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