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경을 열면 사랑이 튀어나온다.

배가번드 2025. 9. 1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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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쥐어짜면 예수님 피가 흘러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인해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요.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곧 구원이고 영생이라는 가르침에서 이러한 말이 나온 겁니다.

이 말씀이 나온 근본원인은 구약의 다음말씀에 있습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12:7)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

 

시간관계상 출애굽기 12장의 모든 내용을 볼 수 없으므로 간단하게 피에 대한 구절만 올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 내용을 예수보혈에 대한 예표(豫表)라 가르치고 있지만 잘못된 해석에 따른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지금 예문으로 올린 출애굽기 12장의 내용은 장자의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놓은 것으로 유월절(무교절) 규례에 대한 것과 성령에 대한 믿음을 비유로서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서 지금 이 말씀으로 인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자(長子)는 육신을 가리키고 피는 성령으로 거듭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요.

예수의 시점에서 보면 출애굽기에 기록된 이 일은 15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로부터는 3500년 전에 모세에 의해서 작성된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가르침이라고 봐야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액면대로 볼 것이 아니라 2천 년 전 예수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몸소 보여주게 된 것이 십자가 퍼포먼스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가 남긴 구약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유월절 규례를 지키며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짓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서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 오늘날의 신약이 되었다는 거지요.

예수가 성령을 깨닫고 보니 모세가 기록해놓은 양의 피가 생명을 뜻하며 성령을 가리킨다는 점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자신의 육신을 매달아 죽이고 성령으로 거듭날 것을 주장했으며 오늘날 예수보혈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보혈에 담긴 뜻을 알게 되면 구약에 담긴 피의 뜻도 알게 되고 가르침이 동일함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 기록된 내용의 참뜻을 모른다면 예수보혈도 오해할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펄쩍 뛰겠지만 진리의 말씀은 영원하므로 이렇게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약을 믿었던 사람들 모두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으므로 지옥에 떨어져야하고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 대다수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예수의 보혈을 모르면 지옥에 떨어진다 말하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구약은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 됨으로 성경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사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십자가 보혈에 대해 설교할 때 피에 대한 부분만 강조하지만 실지로는 무교병에 대한 가르침도 출애굽기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지막만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겁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막14:22)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막14:23)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4)

And he said unto them, This is my blood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shed for many.

 

여기에서 언급되는 떡이란 출애굽기에 언급된 무교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누룩이 들지 않은 떡입니다.

이는 부풀려지지 않은 가르침을 뜻하며 말씀의 떡으로 성령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이 말씀인즉,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예수의 몸이라는 표현을 한 겁니다.

이렇게 성령의 가르침을 제대로 믿게 되면 성령(피)이 몸에 녹아들어 육신과 하나가 됨으로 잔을 들어 마시라고 했으며 새로운 언약의 피라는(blood of the new testament) 표현을 하고 있는 거지요.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고 있던 구약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꼬집고 있는 것으로 속뜻을 알아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하는 동안 한 가지 발견하게 된 것은 마지막 만찬에서는 피라는 말만 나올 뿐 포도주라는 말이 나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피가 곧 생명이고 생명이 곧 성령을 가리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포도주를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피에 담긴 속뜻을 알아야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속뜻을 모르면 예수의 피가 죄를 사한다 말하기 마련이며 구약을 믿고 양을 죽여 피를 문설주에 바른 모세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될 경우 성경을 쥐어짜면 예수의 피가 흐른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피에 담긴 속뜻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하나님에 대해 안다는 것과 맞닿아 있는 일입니다.

피가 생명이고 생명은 곧 하나님의 숨결이므로 생명력은 성령을 가리키며 빛이신 성령이 곧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4:7)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is of God; and every one that loveth is born of God, and knoweth God.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He that loveth not knoweth not God; for God is love.

 

사랑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for love is of God)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7절)(let us love one another)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낳은(born of God) 모든 사랑하는 사람과(every one that loveth)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and knoweth God) 적용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는다는(Beloved)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며 8절에서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에(for God is love) 사랑을 알지 못하면(loveth not knoweth) 하나님을 모른다고(not God) 한 겁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차원의 사랑과는 범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육적이고 물질적이어서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모두를 넘어서고 영의 세계를 포함하여 포괄(包括)적이고 영원하지요.

그러므로 폭력조차 사랑일수 있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성경에 정의로운 하나님이 등장하는데 이는 무조건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 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매를 휘두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성경을 열면 사랑이 튀어나온다는 말은 참되며 성경을 쥐어짜면 빛이신 성령이 피와 같이 흘러내린다는 말도 참되다 말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는 말이 빛이신 성령이 터져 나온다는 말로 들린다는 말입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이니 발길 닿는 곳이 피안(彼岸) 처요 손길 닿는 것이 보리(菩提)라는 말씀을 드리며 여러분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추석명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